서기 80년, 로마. 콜로세움이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티투스 황제는 개장 축하로 검투사 시합을 준비했는데, 그걸로는 성에 안 찼다. 그래서 이 사람이 뭘 했냐면 — 경기장 바닥에 물을 가득 채우고 진짜 군함을 띄웠다. 진짜 무기, 진짜 전투, 진짜 죽음. 허풍처럼 들리겠지만 여러 목격자가 기록을 남겼고, 현대 고고학자들이 그 흔적을 발굴해냈다.
그날 관중석에 마르티알리스라는 시인이 앉아 있었다. 그는 직접 본 장면을 시로 남겼는데, 핵심은 이거다. 아침에는 분명 마른 땅이었는데, 오후에는 군함이 서로 들이받고 있었다. 해가 지면 다시 마른 땅. 경기장이 바다가 됐다가 육지가 됐다가를 반복하는 걸 보면, 건물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무언가를 보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역사가 카시우스 디오의 기록은 더 구체적이다. 티투스는 배 몇 척 띄운 정도가 아니었다. 아테네 대 시라쿠사 같은 그리스 역사 속 유명 해전을 통째로 재현했다. 물에서 훈련받은 말과 소까지 동원됐고, 싸운 건 사형수들이었다. 진짜 칼을 쥐어주고 고대 선원 역할을 맡긴 것이다. 안전장치 같은 건 없었다. 물이 붉게 물들었다.
이걸 가능하게 만든 기술력이 더 놀랍다. 경기장 바닥 아래에는 로마의 수도교와 연결된 수로가 깔려 있었다. 바닥은 방수 콘크리트로 밀봉해서 아래층으로 물이 새지 않게 했고, 거대한 수문으로 물의 양을 조절했다. 공연이 끝나면 배수 시스템이 몇 시간 만에 물을 빼냈다. 쉽게 말해, 경기장을 수영장으로도 쓸 수 있게 만든 건데 — 다만 그 수영장은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이었다.
이 해전은 딱 십 년 정도밖에 이어지지 못했다. 티투스의 동생이자 후계자인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경기장 지하를 완전히 다른 용도로 바꿔버렸다. 동물 우리, 지하 통로, 기계식 승강기로 가득한 거대한 미로를 지은 것이다. 오늘날 콜로세움에 가면 보이는 그 지하 유적이 바로 이것이다. 나무 바닥과 복잡한 기계 장치가 들어서자, 물을 채우는 건 영영 불가능해졌다. 역사상 가장 미친 공연은 그렇게 사라졌다.
세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지만, 로마는 나무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바다를 통째로 끌어왔으니까. 로마인들은 지중해를 '마레 노스트룸', 즉 '우리의 바다'라고 불렀다. 그 바다를 자기들의 가장 거대한 건물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황제의 명 한마디에 물이 차오르고, 한마디에 빠져나갔다. 5만 명의 관중 앞에서 군함이 부딪히고 사람이 죽어가는 걸 본 로마 시민들에게 전해진 메시지는 딱 하나였다 — 로마가 다스리지 못할 것은 이 세상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