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라에는 비가 거의 안 온다. 사하라 사막 일부보다도 적게. 1년에 고작 150밀리미터. 그런데 2천 년 전, 이 땅에 3만 명이 살았다. 분수가 있었고, 정원이 있었고, 수영장이 있었다. 강가도 아니고, 호수 옆도 아니다. 지구에서 가장 메마른 사막 한복판이었다. 나바테아인들은 물을 찾은 게 아니라, 만들어냈다. 현대 과학자들이 분석해보니 서양이 유체역학이라는 이름조차 붙이기 수백 년 전에 이미 그 원리를 꿰뚫고 있었다.
그들의 진짜 무기는 수도관이 아니었다. 비밀이었다. 기원전 312년, 그리스 군대가 이들의 부를 노리고 쳐들어왔다. 나바테아인들은 쫓아가서 박살 냈다. 더 큰 병력이 오자 사막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리스 병사들은 목이 말라 항복을 빌었다. 비밀은 간단했다. 광야 곳곳에 물탱크가 묻혀 있었는데, 위장이 완벽해서 그들만 찾을 수 있었다. 사막이 약점이 아니라 요새였던 거다.
도시의 생명줄은 7킬로미터 떨어진 아인 무사, '모세의 샘'이었다. 그 물을 끌어오려면 시크라 불리는 1킬로미터짜리 좁은 협곡을 통과해야 했다. 한쪽 절벽에는 돌 수로, 반대쪽에는 정밀하게 이어 붙인 토기 파이프를 놓았다. 협곡 입구에는 댐과 터널로 홍수를 도시 바깥으로 돌렸다. 1963년, 바로 그 홍수가 관광객 22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나바테아인들이 2천 년 전에 이미 해결한 문제였다.
생존만으로는 부족했다. 과시하고 싶었다. 1998년, 고고학자 리앤 베달이 옛 지도에 '아래쪽 시장'이라 표기된 곳을 팠다. 시장이 아니었다. 길이 43미터짜리 인공 호수에 섬 하나를 띄운 궁전 정원이었다. 섬에 가려면 헤엄쳐야 했다. 사막 한가운데 호수, 그 위에 떠 있는 섬. 이걸 본 로마 관리라면 딱 하나만 깨달았을 것이다 — 이 사람들은 건드리면 안 된다.
도시 한가운데에는 님파에움이라는 공공 분수대가 3만 시민에게 물을 공급했다. 2025년, 훔볼트 대학교의 니클라스 융만이 산속에서 놀라운 걸 발견했다. 길이 116미터짜리 납 파이프라인. 물을 높은 곳으로 밀어 올린 뒤 반대편으로 흘려보내는 역사이펀이었다. 학계에서는 이 기술이 로마 건축물 안에서만 쓰인 줄 알았다. 나바테아인들은 2천 년 전에 이미 야외에서 돌리고 있었다.
서기 106년, 로마가 페트라를 점령했다. 그리고 거의 전례 없는 일을 했다. 나바테아인의 수도 시스템을 그대로 뒀다. 로마는 점령지마다 자기네 공법을 덮어씌우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페트라에서는 있는 걸 보고 인정한 거다 — 이보다 잘할 수 없다고. 물이 깊을수록 소리가 없다더니, 로마가 처음으로 입을 다문 곳이 바로 페트라였다. 그 뒤로도 2백 년 동안 나바테아인의 파이프가 도시를 먹여 살렸다.
서기 363년 5월 19일, 대지진이 모든 걸 무너뜨렸다. 파이프가 터지고, 수로가 주저앉았다. 5백 년의 공학이 몇 분 만에 끝났다. 다시 지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교역로가 바다로 옮겨갔고, 페트라를 먹여 살리던 무역이 끊겼다. 돈도 사람도 없으니 아무도 수리하지 않았다. 물이 사라지자 페트라도 사라졌다. 연못은 모래에 묻히고, 파이프는 부서지고, 사막이 조용히 모든 걸 집어삼켰다.
지금도 시크 협곡에는 홍수가 쏟아진다. 2022년에는 하루 만에 6개월치 비가 내려 관광객 1,700명이 대피했다. 고대 댐은 폐허가 됐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물은 그냥 마시는 게 아니라 권력이고, 비밀이고, 왕국과 폐허를 가르는 경계선이라는 걸 알았던 사람들이 남긴 마지막 증거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