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이야기는 이렇다. 무장한 노동자 수천 명이 겨울궁전 정문을 돌파하고, 복도마다 총격전을 벌이며, 러시아 정부를 무너뜨렸다는 거다. 근데 이 장면, 에이젠슈테인이 1927년에 만든 영화 〈10월〉에서 나온 거다. 쉽게 말해 선전 영화다. 1917년 10월, 볼셰비키가 수백 년 이어진 차르의 러시아를 끝장낸 그 밤의 실제 이야기는 훨씬 어이없고, 훨씬 엉망이었다.
궁전을 지키는 병력이라곤 몇백 명이 전부였다. 그것도 대부분 10대 사관생도들하고, '여성 결사대'라 불리는 자원입대 여성 부대원들이었다. 이 여성들은 이미 1차 세계대전 최전선에서 싸운 전력이 있었다. 8개월 전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하면서 들어선 임시정부, 그 흔들리는 민주주의를 이 사람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경비병들이 하나둘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혁명의 가장 큰 장애물이 제 발로 걸어 나간 거다.
볼셰비키의 '궁전 습격'은 사실 슬금슬금 기어들어간 거에 가까웠다. 창문 넘고, 하인 출입구로 들어가고. 문제는 겨울궁전에 방이 천 개가 넘는다는 거다. 무장한 노동자들이 복도에서 완전히 길을 잃었다. 그러다 누군가가 차르의 와인 저장고를 발견했다. 러시아 최고급 와인 10만 병. 쿠데타 한복판에서, 역대급 술판이 벌어졌다.
볼셰비키 지휘관들은 패닉에 빠졌다. 술판을 진압하러 보낸 경비병들이 같이 마시기 시작했다. 저장고 입구를 벽으로 막았더니 뚫고 들어왔다.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10만 병을 전부 박살 냈다. 와인이 궁전 배수구를 타고 밖으로 쏟아졌다. 수도 한복판에 붉은 강이 흐른 거다. 그 사이, 진짜 정부—러시아 내각 장관들은 작은 식당에 둘러앉아 있다가, 총 한 발 없이 체포됐다.
1917년 10월 26일 새벽, 레닌이 군중 앞에 섰다. "임시정부는 타도되었다." 그 한마디였다. 로마노프 왕조가 300년간 군림한 겨울궁전이, 열두 시간 만에 주인이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 와인 저장고에서 벌어졌다.
세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지만, 이 제국은 한 번에 넘어갔다. 그것도 도끼가 아니라 와인잔에 맞고서. 그런데 정작 놀라운 건 그다음이다. 혁명가들이 궁전의 보물은 건드리지 않았다. 렘브란트, 루벤스, 다빈치—차르가 평생 모은 세계 최고의 미술품을 불태울 수도 있었다. 왕족의 사치를 상징하는 모든 것을. 대신 문을 활짝 열었다. 겨울궁전은 에르미타시 박물관이 됐고, 황제만 보던 걸작이 모두의 것이 됐다.
결국 로마노프가 자기 부를 과시하려고 지은 궁전이, 그들의 몰락을 전시하는 공간이 됐다. 20세기 최대의 권력 교체는 영웅적 함성이 아니라, 어두운 복도에서 헤매는 발소리와 깨진 와인병 냄새, 그리고 식탁 위의 조용한 체포로 끝났다. 역사상 가장 거대한 혁명은 포효가 아니라 숙취로 시작된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