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9년, 프랑스 알프스 산자락의 피네롤 요새에 마차 한 대가 도착했다. 안에는 얼굴을 가린 죄수가 타고 있었다. 훗날 전설이 만들어 낸 철가면이 아니라 벨벳 가면이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간수 생마르스에게 내려온 명령은 유럽 최강의 왕, 루이 14세에게서 직접 온 것이었다. 이 남자를 살려둬라. 편하게 해줘라. 그리고 절대로 누구인지 알려지게 하지 마라.
농담이 아니었다. 경비병들은 죄수에게 기본적인 용건 외에 말을 걸 수 없었다. 면회도, 편지도 없었다. 누군가 정체를 알아내려 하면 죽는 건 죄수가 아니라 물어본 그 사람이었다. 이 남자가 뭘 알고 있었든, 뭘 상징했든, 프랑스 왕실은 그걸 산 채로 묻어버리기로 한 것이다.
34년이었다. 가면 쓴 죄수는 감옥에서 감옥으로 옮겨졌다. 피네롤에서 남프랑스 해안의 섬 요새 생트마르게리트로, 마지막으로 파리의 바스티유로. 간수 생마르스는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따라갔다. 죄수가 옮겨질 때마다 자기도 승진하며 함께 이동했다. 1703년, 죄수가 숨을 거뒀다. 감방은 즉시 해체됐다. 벽을 긁어내고, 가구를 태우고, 흔적이란 흔적은 모조리 지워버렸다.
대체 누구였을까. 이 물음은 300년 넘게 사람들을 괴롭혀 왔다. 18세기 프랑스의 대문호 볼테르는 이 죄수가 루이 14세의 쌍둥이 형제라고 주장했다. 왕위를 위협할 수 있으니 숨겼다는 것이다. 한 세기 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가 이걸 역대 최고의 모험 소설 중 하나로 만들어 냈다. 오늘날 대부분이 아는 건 바로 그 버전이다.
가설은 수십 가지다. 루이 14세를 속인 이탈리아 외교관 마티올리 백작이라는 설, 불명예를 당한 프랑스 장군이라는 설. 가장 파격적인 주장은? 이 죄수가 왕의 진짜 생부라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태양왕은 왕위를 물려받을 자격이 없었다는 뜻이 된다. 모든 가설에 나름의 근거가 있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늘날 학자들이 가장 유력하게 보는 건 의외로 가장 단순한 이야기다. 외스타슈 도제라는 하급 하인이 프랑스 유력 대신을 모시다가 국가 기밀을 우연히 알게 됐다. 처형할 만큼 중요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풀어주기엔 너무 위험한 비밀이었다. 그래서 얼굴을 가리고 평생을 가둬버렸다.
세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 비밀은 300년을 찍어도 끄떡없다. 루이 14세는 베르사유를 짓고, 유럽 전역에 전쟁을 일으키고, 자신을 태양왕이라 칭하던 당대 최고 권력자였다. 그런 그조차 이 죄수 하나를 처리하지 못했다. 죽일 수도, 풀어줄 수도, 얼굴을 보여줄 수도 없었다. 가면 뒤에 숨겨진 무언가는 그 가면을 씌운 왕보다 강했다. 300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