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전야, 예루살렘 성묘교회의 모든 불이 꺼진다. 램프도, 촛불도, 하나 남김없이. 교회는 봉인된 무덤처럼 어두워진다. 만 명의 순례자가 그 어둠 속에 서 있다. 각자 손에 서른세 개의 꺼진 초를 쥐고 있다——예수가 이 땅을 걸은 햇수만큼이다. 아테네에서, 모스크바에서, 아디스아바바에서 온 사람들. 그들은 기다린다. 빛의 기억만을 붙잡고, 그 빛이 돌아올 거라는 믿음 하나로.
총대주교가 에디쿨라 안으로 들어간다. 예수가 묻히고, 믿는 이들에 따르면 부활한 바로 그 무덤 위에 세워진 대리석 성당이다. 군중 앞에서 몸수색을 받았다. 성냥도 라이터도 없다. 문이 봉인된다. 정적. 그러다 무덤의 작은 타원형 창으로 빛이 새어 나온다. 총대주교가 타오르는 횃불 두 개를 들고 나오는 순간, 교회가 터진다. 불꽃이 심지에서 심지로, 손에서 손으로 번져 만 개의 불꽃이 어둠을 삼킨다.
이 일이 천칠백 년째 이어지고 있다. 서기 385년경, 로마의 여행자 에게리아가 이 의식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보다 수십 년 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로마 신전 아래서 십자가 처형 장소를 발견했고, 대제는 무덤 위에 대성당을 세웠다. 페르시아군에 불탔고, 이집트 칼리프에게 허물어졌고, 지진에 무너졌고, 세월에 닳았다. 하지만 매년 성토요일이면 불은 돌아왔다. 돌은 부서져도, 의식은 돌보다 오래간다.
1579년, 아르메니아인들이 오스만 제국의 허락을 얻어 의식을 주관하게 됐다. 그리스 정교회 총대주교는 문밖으로 쫓겨났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입구 옆 대리석 기둥 앞에서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교회 안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이 기다렸다. 불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밖에서——기둥이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갈라지더니, 그 틈에서 불꽃이 터져 나왔다. 쫓겨난 총대주교의 바로 눈앞에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그날 불은 돌 속에서 제 길을 찾았다. 그 갈라진 자국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까맣게 그을린 채로.
목격자 중에 투놈이라는 오스만 장교가 있었다. 돌에서 불이 터지는 걸 보고,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선언했다. 즉시 체포되어 배교죄로 산 채로 화형당했다——하늘의 불을 믿은 사람이 땅의 불에 삼켜졌다. 교회는 오늘날까지 그를 순교자로 기린다. 크게 흔들린 오스만 당국은 그리스 정교회에 의식 주관권을 돌려줬다. 그로부터 사백오십 년, 아무도 그 권리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이 교회 자체가 인간 본성의 축소판이다. 여섯 개 교파가 촘촘한 규칙 아래 교회를 나눠 쓰는데, 의자 하나 옮겼다가 수도사끼리 주먹다짐이 벌어지기도 한다. 건물 외벽에는 1728년부터 놓여 있는 나무 사다리가 있다. 아무도 치우지 못한다——옮길 권한을 가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정문 열쇠는? 서기 637년부터 두 무슬림 가문이 보관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서로를 믿지 못해서 자기들끼리 열쇠를 맡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서만 가능한, 황당하고, 아름답고, 그런데도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오늘날 성화는 전세기를 타고 몇 시간 안에 예루살렘에서 아테네, 모스크바, 부쿠레슈티, 아디스아바바로 옮겨진다. 공항 직원들이 환호로 맞이하고, 대통령이 활주로에 나와 영접한다. 토요일 오후 돌무덤에서 피어난 불꽃 하나가, 일요일 아침이면 네 대륙에 닿는다. 순례자들은 불꽃 속으로 손을 내밀며 뜨겁지 않다고 맹세한다. 회의론자들은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매년 모두 돌아온다. 어둠 속에 함께 서기 위해——인류가 아주 오랜 옛날부터 해온 일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