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한복판, 황금빛 돔 아래 바위가 하나 있다. 산에서 뼈처럼 솟아오른 거친 맨바위. 유대인은 '세상의 주춧돌'이라 부르고, 무슬림은 '알사크라'라 부른다. 두 전통이 입을 모아 같은 말을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을 때, 바로 이 자리에서 시작했다고.
이 바위 위에서 아브라함은 아들을 바치려 했다. 토라에선 이삭, 꾸란에선 이스마일. 이야기의 뼈대는 같다 — 가장 사랑하는 것을 내놓으라는 명령. 장작을 지고 사흘을 걸었다. 아들이 물었다. "불과 나무는 있는데, 제물은요?" 아브라함이 대답했다. "하나님이 준비하실 거다." 그 뒤로 부자 사이의 침묵이 산보다 무거웠다.
천 년 뒤 솔로몬 왕이 바위 위에 성전을 세웠다. 삼나무, 황금, 청동. 그 심장부 '지성소'에는 일 년에 단 한 번, 맨발의 대제사장만 들어가 하나님의 진짜 이름을 속삭였다. 사백 년을 버텼다.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모조리 불태웠다. 언약궤는 사라졌고, 끌려간 이들은 울며 노래했다. "예루살렘을 잊는 날, 내 오른손이 말라 버려라."
돌아온 이들이 성전을 다시 세웠고, 헤롯 왕이 거대하게 키웠다. 예수가 들어와 상인들의 탁자를 뒤엎으며 말했다.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으리라." 서기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가 그 말을 현실로 만들었다. 병사들이 녹아내린 금을 긁어내려 돌을 하나하나 뜯어냈다. 남은 건 서쪽 벽 하나. 유대인들이 이천 년째 이마를 대고 기도하는 바로 그 벽이다.
육백 년간 폐허였다. 로마인은 이교 신전을 세웠고, 비잔틴은 쓰레기를 쏟아 유대인을 모욕했다. 637년, 칼리프 우마르가 예루살렘에 들어섰다. 아브라함의 바위 위에 쌓인 오물을 보더니, 직접 무릎 꿇고 치웠다. 오십 년 뒤 칼리프 압둘말리크가 황금 돔을 올렸다. 이집트 세금 칠 년치를 쏟아부었다. 세상이 시작된 바위에 왕관을 씌우는 일인데, 아까울 게 뭔가.
1099년,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짓밟고 안의 사람들을 학살했다. 돔에 십자가를 박고 바위에 제단을 올렸다. 팔십팔 년 뒤 살라딘이 도시를 되찾았다. 학살은 없었다. 십자가를 내리고 초승달을 올린 뒤, 다마스쿠스에서 가져온 장미수로 바위를 씻겼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지만 — 이 바위는 천 번을 맞고도 꿈쩍하지 않았다. 바위는 누가 정복했는지 기억하지 않는다. 누가 울었는지만 기억한다.
지금도 유대인은 서쪽 벽에서 기도하고, 산 위는 너무 거룩해서 올라가지 않는다. 무슬림은 알아크사에서 예배하고, 기독교인은 예수가 가르치던 길을 걷는다. 세 종교. 하나의 바위. 삼천 년. 돔 아래 맨바위는 그저 거기 있다 — 창백하고, 거칠고, 제국 따위엔 관심 없다는 듯. 솔로몬도 티투스도 십자군도 오스만도 다 지나갔다. 다음 것도 지나갈 것이다. 바위는 말이 없다. 고르지도 않는다. 다만 모든 기도를, 모든 언어로,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 단 한 번도 거절한 적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