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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관과 정복·2/7·2
Photograph of 에페소스 고대 도시

The place

에페소스 고대 도시

에페소스의 난장판

주교 두백 명이 싸운 날, 열여섯 세기의 믿음이 바뀌었다

Late Roman / Early Byzantine Period (431 AD)에페소스 고대 도시

기 431년 여름, 이백 명이 넘는 주교들이 고대 도시 에페소스로 몰려들었다. 기도하러 온 게 아니었다. 싸우러 온 거였다. 로마 황제가 기독교 세계를 둘로 쪼개놓은 문제에 결론을 내기 위해 대규모 공의회를 소집했다. 마리아는 그저 우연히 신이기도 했던 사람의 어머니일 뿐인가, 아니면 그보다 훨씬 큰 존재—'신의 어머니' 그 자체인가? 이 답이 앞으로 1600년 동안 수십억 명이 무엇을 믿을지를 결정하게 된다.

한쪽에는 네스토리우스가 있었다.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이자 동로마 제국 교회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 그의 주장은 이거였다—마리아가 낳은 건 그리스도의 인간적 본성뿐이라고. 맞은편에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키릴로스가 서 있었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마리아는 살과 뼈를 입은 하느님을 품었다, 이게 전부다. 하지만 이건 처음부터 순수한 신학 논쟁이 아니었다. 콘스탄티노플과 알렉산드리아는 수십 년째 동방 기독교의 주도권을 놓고 으르렁거리던 사이였다. 교리 싸움은 그저 가장 최근의 전장이었을 뿐이다.

키릴로스가 먼저 에페소스에 도착했다—그리고 기다리지 않았다. 네스토리우스를 지지하는 시리아 주교들이 아직 길 위에 있었는데, 키릴로스는 회의를 열어버렸다. 단 하루 만에 네스토리우스를 재판에 세우고, 그의 가르침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모든 직함을 박탈했다. 상대가 성문도 들어서기 전에 모든 게 끝나 있었다. 뒤늦게 도착한 시리아 주교단은 분노가 폭발했다. 자기들끼리 맞불 공의회를 열고, 키릴로스를 파문해 버렸다.

그 뒤 몇 주 동안 에페소스는 완전한 아수라장이 됐다. 두 패의 주교단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서로를 이단이니 사기꾼이니 불렀다. 양쪽 수도사들은 길바닥에서 주먹다짐을 벌였다. 교회 통합을 꿈꾸며 이 회의를 소집한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는 마침내 폭발했다—키릴로스와 네스토리우스 둘 다 감옥에 집어넣어 버린 것이다. 교회를 치유하겠다던 모임이 로마 제국 역사상 가장 화려한 종교적 대참사로 변해 버렸다.

하지만 키릴로스의 진짜 무서운 점은 여기서 드러났다. 감옥 안에서 그는 현대 정치인도 혀를 내두를 만한 로비 작전을 펼쳤다. 금, 상아, 최고급 비단이 담긴 상자들이 황궁의 핵심 인물들에게 조용히 배달됐다. 뇌물은 통했다. 황제는 키릴로스를 풀어주고 그의 판결을 인정했으며, 네스토리우스를 이집트 깊숙한 사막으로 추방했다. 네스토리우스는 거기서 남은 생을 보내며, 아무도 답장하지 않는 편지를 써 내려갔다.

이 공의회의 결정—마리아는 '테오토코스', 곧 '신의 어머니'다—은 기독교를 규정하는 핵심 교리가 됐다. 거의 1600년이 지난 지금도 가톨릭과 정교회 신앙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 우리 속담에 '되면 충신, 안 되면 역적'이라는 말이 있다. 키릴로스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갔다. 이긴 자는 역사만 쓰는 게 아니다—신학까지 쓴다. 조작된 표결, 뒷거래, 그리고 이 진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한 명의 주교. 그것이 수십억 명의 믿음을 만들었다.

이야기의 교훈

가장 큰 신학 논쟁은 결코 순수한 신학이 아니다—권력, 야망, 정치가 수십억 명이 진리로 받아들이는 교리를 만든다.

등장인물

C
Cyril of Alexandria
N
Nestorius of Constantinople
E
Emperor Theodosius II
S
Syrian bishops
T
The Virgin Mary (in theological debate)

출처

Acts of the Council of Ephesus; Evagrius Scholasticus, Ecclesiastical 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