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독일 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가 터키 남동부의 한 언덕을 파기 시작했다. 땅속에서 드러난 건 고고학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다. 괴베클리 테페. 기원전 9600년경에 세워진 석조 신전으로,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칠천 년이나 앞선다. 슈미트가 특히 주목한 건 위치였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시작되는 곳, 이른바 ‘비옥한 초승달 지대’. 성경 창세기가 에덴동산을 놓은 바로 그 지역이다.
만 천 년 전, 이 일대는 지금처럼 메마른 땅이 아니었다. 언덕마다 야생 밀과 보리, 포도가 가득했고, 사냥감은 어디를 가도 넘쳐났다. 수렵과 채집으로 살던 사람들에게 이곳은 자연이 차려놓은 뷔페였다. 밭을 갈 필요도, 등이 휘도록 일할 이유도 없었다. 그냥 밖에 나서기만 하면 세상이 먹여줬다. 이게 낙원이 아니면 대체 뭘 낙원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런데 바로 이 땅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환이 일어난다. 사람들이 씨를 뿌리고, 가축을 기르고, 한곳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농업의 탄생. 창세기는 왜 인류의 ‘타락’을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살리라”는 노동의 저주로 그렸을까. 슈미트는 이게 우연이 아니라고 봤다. 에덴에서 쫓겨난 이야기는, 인류가 낙원을 등지고 쟁기를 쥔 순간의 아득히 오래된 기억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이야기는 한층 더 기이해진다. 기원전 8000년경, 괴베클리 테페 사람들은 누구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하는 일을 벌였다. 신전 전체를 수 톤의 흙으로 일부러 묻어버린 것이다. 지진도 홍수도 아닌, 의도적이고 정성스러운 매장이었다. 시기가 소름 돋게 맞아떨어진다. 이 지역에서 농업이 완전히 자리 잡은 시점과 거의 정확히 겹치는 것이다. 마치 옛 세계의 문을 제 손으로 닫은 것처럼.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다. 인류는 처음으로 씨를 뿌렸고, 문명이라는 열매를 거뒀다. 대신 낙원을 영영 잃었다.
상징적 단서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유적의 거대한 T자형 석주들은 나무를 형상화한 것일 수 있고, 각 원형 구조물 중앙에 우뚝 선 두 개의 큰 기둥은 에덴의 ‘생명나무’와 ‘지식의 나무’에 비교되기도 한다. 석주에는 여우, 뱀, 전갈, 독수리 등 수십 종의 동물이 새겨져 있다. 잃어버린 세계의 생물 도감 같다. 유적 전체에 의식의 기운이 감돌고, 인간이 자기 자신을 넘어선 무언가에 닿으려 했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괴베클리 테페가 정말로 에덴동산이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에덴은 신화이지 지도 위에 핀을 꽂을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하지만 진짜 물어야 할 건 그게 아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의 메아리를 품고 있느냐는 것이다. 야생과 함께 살던 삶을 접고 세상을 제 손으로 다시 빚기 시작한 그 순간. 문명을 얻는 대가로 낙원을 치른, 돌이킬 수 없는 선택.
이 신전을 세운 사람들에게는 문자도, 금속 도구도, 바퀴도 없었다. 우리가 ‘문명’이라 부르는 거의 모든 것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만 이천 년 전, 저 돌의 신전 안에 서서, 사랑하던 세계가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상실을 백 세대에 걸쳐 전해갔고, 마침내 그것은 하나의 동산과 하나의 추방,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