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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관과 정복·2/3·2
Photograph of Göbekli Tepe

The place

Göbekli Tepe

먼저 신전, 그다음 도시

문명의 기원을 다시 쓴 발견

~9600-8000 BCGöbekli Tepe

년 넘게 학자들은 문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고 있다고 확신했다. 이야기는 단순했다. 먼저 인류가 농업을 발명했다. 그다음 마을에 정착했다. 그러고 나서 복잡한 사회 구조를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신전을 지었다. 종교는 문명의 결과물이지, 원인이 아니라는 게 정설이었다.

괴베클리 테페가 그 정설을 산산조각 냈다.

터키 남동부에서, 정착 마을도 없고, 재배 작물도 없고, 토기도 모르는 수렵채집인들이 거대한 신전 단지를 세웠다. 높이 5미터가 넘는 석주에 동물 부조가 새겨져 있고, 완벽한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이후 6천 년 동안 이에 필적할 건축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조직화된 종교가 농업보다 먼저 존재했던 것이다.

수십 년간 발굴을 이끈 독일 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는 혁명적인 주장을 펼쳤다. «먼저 신전이 있었고, 그다음에 도시가 생겼다.» 신앙은 문명에서 태어난 게 아니다. 신앙이 문명을 만들어낸 것이다.

한국 속담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다. 괴베클리 테페에서 그 시작은 밭이 아니라 제단이었다. 이곳이 워낙 중요했기에 주변 지역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건설과 의식에 참여했다. 이 순례자들을 먹이려면 엄청난 양의 식량이 필요했다.

수렵채집만으로는 그만큼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신전 근처에서 야생 곡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 농업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고고학적 증거도 이를 뒷받침한다. 인류가 처음 재배한 밀인 아인코른 밀은 괴베클리 테페에서 보이는 카라자다 산에서, 신전이 활발히 운영되던 바로 그 시기에 경작되기 시작했다.

슈미트의 주장이 맞다면, 종교는 인류 진보의 부산물이 아니다. 그 토대다. 함께 기도하고, 성스러운 공간을 짓고, 신성한 것에 닿고 싶다는 열망 — 바로 이 열망이 인류를 유목 생활에서 벗어나 땅을 일구고 최초의 도시를 세우도록 이끌었다.

이것이 괴베클리 테페의 진정한 의미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신전이라는 사실만이 아니다. 영성이 인간 본질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이야기의 교훈

종교는 문명의 부산물이 아니라 문명의 원동력이었다. 괴베클리 테페는 함께 경배하려는 열망이 인류를 정착과 농경으로 이끌었음을 보여준다.

등장인물

K
Klaus Schmidt
T
The builders of Göbekli Tepe
E
Early farmers of Karacadağ

출처

Klaus Schmidt's "Göbekli Tepe: A Stone Age Sanctuary in South-Eastern Anatolia" (2012), comparative archaeological studies, einkorn domestication rese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