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년 동안 세상은 거짓말을 믿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피라미드 완공 2천 년 뒤에 쓴 글 한 줄이 시작이었다. "파라오 쿠푸가 10만 명의 노예를 동원했다." 할리우드는 이걸 물고 늘어졌다. 사슬에 묶인 포로들이 채찍을 맞으며 돌을 끄는 장면. 성경 속 이집트 노예 이야기까지 겹치면서, 피라미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건축물이 되었다. 다 틀렸다.
1990년, 스핑크스 남쪽. 관광객이 타고 있던 말 한 마리가 모래 밖으로 삐죽 솟은 진흙 벽에 걸려 비틀거렸다. 사막에 널린 유적 하나쯤으로 보이는, 아무것도 아닌 잔해. 하지만 이 한 번의 비틀거림이 피라미드에 대해 세상이 알던 모든 것을 뒤집어 놓게 된다.
고고학자 마크 레너와 이집트학자 자히 하와스가 삽을 들었다. 모래 아래서 나온 건 상상을 초월했다. 기숙사, 빵집, 양조장, 생선 가공 시설, 구리 공방, 그리고 부상자를 치료한 병원까지. 최대 2만 명을 먹이고 재우고 돌본 계획 도시가 통째로 묻혀 있었다. 노예 수용소가 아니었다. 사람이 사는 진짜 마을이었다.
이 노동자들은 소고기를 먹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소고기는 특권층의 음식이었다. 노예 밥상에는 절대 올라갈 수 없는 것. 빵과 맥주도 넉넉히 배급받았다. 다치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았다. 부러진 뼈를 정확히 맞춰 고정하고, 팔을 절단한 뒤에도 수년간 살아남은 흔적이 나왔다. 노예한테 이런 공을 들이는 문명은 없다. 아끼는 사람한테나 이렇게 한다.
결정타는 무덤이었다. 많은 노동자가 피라미드 바로 옆에 자기만의 무덤을 갖고 있었다. 작지만 격식을 갖춘 무덤.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신성한 영역 옆에 노예를 묻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무덤에는 작업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쿠푸의 벗들", "멘카우레의 술꾼들". 이건 고통의 이름이 아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끼리 장난으로 붙인 별명, 자부심이 묻어나는 이름이다.
진짜 이야기는 누구도 예상 못 한 것이었다. 피라미드는 국가 프로젝트였다. 이집트 전역 마을에서 사람들이 올라와 석 달씩 교대로 일했다. 일종의 노동 세금. 작업반끼리 경쟁하고, 자기 솜씨에 자부심을 가졌다. 집에 돌아가면 자기 손으로 이집트에서 가장 신성한 건축물을 올렸다고 말할 수 있었다. 벌이 아니었다. 평범한 이집트인이 신의 영역에 가장 가까이 닿을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거짓말은 다리가 짧다고 했다. 이 거짓말은 유독 다리가 길었다—2,500년을 버텼으니까. 하지만 결국 말 한 마리가 비틀거린 그 순간, 함께 고꾸라졌다. 피라미드는 잔인함이 아니라 믿음과 기술과 자부심이 쌓아 올린 것이었다. 채찍에 끌려간 게 아니라, 스스로 줄을 서서 자기보다 큰 무언가의 일부가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 그들이 올린 돌은 그 이후 모든 제국보다 오래 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