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35년경, 엘리스는 그리스 최고의 조각가를 올림피아로 불렀다. 아테네 출신 페이디아스는 이미 두 걸작으로 유명했다. 아크로폴리스의 거대한 청동 아테나 상, 파르테논 안의 금과 상아 아테나 상. 하지만 이번 과제는 더 컸다. 그리스에서 가장 신성한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에 주신의 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가 완성한 작품은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가 되었다.
상은 나무 뼈대에 금과 상아를 입혀 만들었다. 제우스는 왕좌에 앉아 있었고, 상아 피부는 어두운 신전 안에서 살아 있는 듯 빛났다. 금으로 만든 옷과 샌들은 희미한 빛도 놓치지 않았다. 오른손에는 승리의 여신 니케 상을, 왼손에는 독수리가 얹힌 귀금속 홀을 들고 있었다. 왕좌는 금, 흑단,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상은 바닥에서 약 12미터 높이로 솟아 있었다. 지리학자 스트라본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제우스가 일어서면 머리가 천장을 뚫을 것이라고. 비율 비판이 아니라 압도적인 존재감의 증언이었다. 신은 표현된 것이 아니라 거기 있었다. 방문객들은 진짜 신들의 왕 앞에 섰다고 느꼈다.
고대 작가들은 그 감동을 묘사하려 경쟁했다. 파우사니아스는 이 상이 제우스의 위엄에 무언가를 더했다고 적었다. 연설가 디온은 더 강하게 말했다. 이 앞에 서면 살면서 겪은 모든 슬픔을 잊는다고. 황금빛 얼굴에서 뿜어지는 평화가 너무 강렬하기 때문이라고. 이것을 보지 않고 산 사람은 진정 산 것이 아니라고도 했다.
사람들은 신전에 들어서면 거리낌 없이 울었다. 전쟁을 겪은 군인도, 온 세상을 떠돌던 여행자도 제우스의 고요한 눈빛 앞에서 무너졌다. 상아 피부는 따뜻하고 살아 있어 보였고, 금 옷의 주름은 바람 없이 흔들리는 듯했다. 보석 박힌 눈은 온화한 전지함으로 보는 이를 따라갔다.
세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했던가. 페이디아스도 세 번째 걸작에서야 신의 마음을 움직였다. 청동 아테나, 금 아테나에 이어 세 번째 작품 제우스가 그의 인생작이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완성 후 그가 제우스에게 승인을 구하자 번개가 대리석 바닥을 때려 검은 자국을 남겼다. 수백 년간 방문객에게 보여진 그 자국은 신의 도장이었다.
이 상은 약 900년간 올림픽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4세기 말 기독교가 로마 제국을 휩쓸면서 운명이 흔들렸다.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 사이에 상은 새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고, 475년 궁전 화재로 소실되었다. 금은 녹고, 상아는 갈라져 타고, 뼈대는 재가 되었다. 7대 불가사의 하나가 영원히 사라졌고, 그 앞에서 울었던 이들의 글 속에서만 살아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