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예언자와 순례자·4/5·3
Photograph of 올림피아 — 제우스의 성역이자 올림픽의 탄생지

The place

올림피아 — 제우스의 성역이자 올림픽의 탄생지

신성 휴전 — 그리스가 싸움을 멈춘 날

1,169년간 지속된 평화

776 BCE - 393 CE올림피아 — 제우스의 성역이자 올림픽의 탄생지

원전 9세기, 펠로폰네소스 반도는 지옥이었다. 역병이 마을을 쓸어버리고,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쉬지 않고 서로를 죽였다. 부족 대 부족, 도시 대 도시 — 그리스는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었다. 엘리스의 왕 이피토스는 막다른 길에 몰리자 그리스인들이 늘 그랬듯 마지막 수단을 택했다. 델포이 신전으로 가서 신탁을 구한 것이다.

신탁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군대를 모으라는 말도, 동맹을 맺으라는 말도 아니었다. 올림피아에서 운동 경기를 열고,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모든 전쟁을 멈추라는 것이었다. 단순하면서도 불가능한 명령이었다. 그리스인에게 싸움을 멈추라고 하는 건 바다에게 출렁이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이피토스는 동맹을 찾았다. 올림피아 주변 땅을 다스리던 피사의 왕 클레오스테네스, 그리고 그리스 전역에서 한마디면 법이 되던 전설적 입법자 스파르타의 리쿠르고스. 세 사람이 함께 만든 것이 에케케이리아, 즉 신성 휴전이었다. 그 조항은 올림피아 헤라 신전에 보관된 청동 원반에 새겨졌다. 여행가 파우사니아스가 수백 년 후 직접 눈으로 보고 기록을 남겼다.

규칙은 명확했다. 경기 기간 동안 — 처음에는 한 달, 나중에는 석 달로 연장 — 모든 그리스 국가는 적대 행위를 중단해야 했다. 어떤 군대도 행군할 수 없고, 어떤 도시도 포위당하지 않으며, 어떤 처형도 집행되지 않았다. 엘리스 영토는 영구적으로 신성불가침 지역으로 선포되었고, 올림피아로 향하는 선수와 여행자는 적국 영토를 지나더라도 완전한 안전을 보장받았다.

매 휴전을 알리기 위해 올리브 화관을 쓴 세 명의 신성한 전령이 엘리스를 떠나 그리스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시칠리아에서 흑해 연안까지, 북아프리카에서 에게해 섬들까지. 이 전령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제우스를 모욕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도착하는 곳마다 전쟁이 멈추고 올림피아로 가는 길이 모두에게 열렸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하지만, 신성 휴전이라는 나무는 1,169년을 버텼다. 물론 도전은 있었다. 기원전 420년, 펠로폰네소스 전쟁 한복판에서 스파르타가 휴전 기간에 엘리스 영토로 군대를 보내는 실수를 저질렀다. 막대한 벌금이 부과되었고, 스파르타가 거부하자 그해 올림픽에서 쫓겨났다. 그리스 최강의 전사들이 그 굴욕을 받아들였다. 스파르타조차 올림피아를 더럽힐 수는 없었다.

이 휴전은 기원전 776년 첫 올림픽부터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393년에 경기를 금지할 때까지, 무려 1,169년간 이어졌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신성한 평화가 깨진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에케케이리아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진실을 증명했다. 아무리 호전적인 민족도 무기를 내려놓을 이유를 찾을 수 있고, 명예로운 경쟁에 대한 열망은 — 비록 잠시일지라도 — 전쟁의 북소리를 잠재울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의 교훈

아무리 전쟁을 좋아하는 민족이라도 평화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신성 휴전은 공유된 가치가 어떤 정치적 갈등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등장인물

I
Iphitos of Elis
C
Cleosthenes of Pisa
L
Lycurgus of Sparta
T
The Oracle at Delphi

출처

Pausanias's Description of Greece, Thucydides's History of the Peloponnesian War, Plutarch's Li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