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사막 한복판, 가장 가까운 바닷가에서도 2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따뜻한 샘물이 바위틈을 뚫고 올라왔다. 그 주변으로 대추야자가 자라고, 오아시스가 만들어지고,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고대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 도시가 태어난 것이다. 아랍인들은 이곳을 타드모르, 그러니까 대추야자의 도시라고 불렀다. 그리스인들은 팔미라라고 이름 붙였다. 성경에는 솔로몬 왕이 세운 도시라고 나오는데, 거의 확실히 사실이 아니다. 다만 너무 부유해서 인류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왕 말고는 설립자로 믿어줄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
팔미라가 번영한 비결은 허무할 정도로 단순하다. 위치다. 로마와 페르시아, 서로를 죽도록 싫어하면서도 교역 없이는 못 사는 두 초강대국 한가운데 딱 자리 잡고 있었다. 북쪽으로 돌아가면 산맥이고, 남쪽으로 가면 죽음의 사막이다. 팔미라만이 대상단이 살아서 사막을 건널 수 있는 유일한 중간 기착지였다. 한국 속담에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했는데, 팔미라는 그 새우가 등이 터지기는커녕 양쪽 고래한테 통행료를 받으며 떼돈을 번 기적의 케이스였다.
이 도시를 지나간 물건들의 목록을 보면 입이 벌어진다. 중국산 비단, 인도산 후추와 계피, 아라비아 유향, 페르시아만 진주, 아프리카 상아. 반대 방향으로는 로마의 와인과 유리가 흘러갔다. 팔미라는 이 중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다. 그저 운반하고, 세금 매기고, 모든 거래에서 수수료를 챙겼다. 군대 한 번 일으키지 않고 무역 제국을 세운, 인류 최초의 글로벌 물류 회사였던 셈이다.
사막을 횡단하는 대상단을 이끄는 리더들은 투자자이자 군인이자 CEO였다. 낙타 수백 마리를 자비로 먹이고, 사설 무장 병력을 고용해서, 한 발짝만 잘못 디뎌도 전원 사망인 사막을 몇 주씩 건넜다. 짐을 무사히 갖고 돌아오면 도시가 최고의 영예를 안겨줬다. 메인 거리에 청동 동상을 세워준 것이다. 그 거리는 1킬로미터가 넘었고, 양쪽으로 750개의 돌기둥이 늘어서 있었는데, 기둥마다 상인의 조각상이 올려져 있었다. 로마에서는 전쟁을 이겨야 동상이 세워졌다. 팔미라에서는 비단을 배달하면 됐다.
서기 137년, 상인들은 세리들이 멋대로 세금을 매기는 데 진절머리가 났다. 그래서 세금 법률 전체를 높이 5미터짜리 석회암 판에 새겼다. 아람어와 그리스어, 두 개 언어로. 그리고 그걸 광장 한복판에 떡하니 세워버렸다. 모든 품목, 모든 세율이 누구나 볼 수 있게 돌에 새겨졌다. 아마 인류 최초의 정보 공개였을 것이다. 그 석판은 지금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현존하는 고대 비문 중 가장 긴 것 중 하나다.
전성기인 서기 200년대, 이 도시에는 10만 명이 살았다. 황금빛 사암이 사막의 햇빛을 받아 빛났다. 벨 신전은 중동에서 가장 웅장한 건축물 중 하나였다. 성벽 밖에는 5층 높이의 탑 무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그 안의 초상화 속 여인들은 진주와 금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이 도시의 모든 것이 번역이었다. 물건은 두 제국 사이를 오갔고, 비문은 두 개 언어로 새겨졌고, 신은 열두 개가 넘는 문화에서 빌려와 이 도시만의 믿음으로 빚어졌다.
그러다 서기 272년, 팔미라의 여왕 제노비아가 운명의 도박을 벌인다. 더 이상 중간상인으로 살 필요 없다, 우리가 제국이 되자. 그녀는 이집트를 정복하고, 로마 영토를 하나씩 집어삼키고, 독립을 선언했다. 로마 황제 아우렐리아누스가 군단을 이끌고 동쪽으로 진격해 팔미라를 짓밟았다. 고래 싸움에서 수백 년간 기적처럼 살아남은 새우가, 어느 날 자기도 고래가 되겠다고 나서는 순간——등이 터졌다.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아서 번영했던 도시가, 누군가가 되려 한 순간 사라졌다.
그 돌기둥 몇 개는 지금도 시리아 사막에 서 있다. 받침대는 비어 있고, 청동 상인들은 진작에 사라졌다. 하지만 세금 석판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유리 진열장 안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거기 새겨진 숫자와 물품 이름을 읽으면 한 도시의 심장 소리가 들린다. 진짜 힘은 군대가 아니라, 두 세계 사이에 서서 양쪽 모두와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그걸 믿었던 도시의 심장 소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