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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관과 정복·2/5·3
Photograph of Palmyra

The place

Palmyra

로마를 구한 사막의 사자

페르시아가 로마 황제를 사로잡았을 때, 사막의 왕자가 페르시아 수도 성문까지 쳐들어갔다 — 그러나 그가 목숨 걸고 지킨 제국은 결국 그의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서기 260-267년 (3세기 위기: 발레리아누스 황제 포로부터 오다이나투스 암살까지)Palmyra

기 260년, 로마 제국은 건국 800년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순간을 맞았다. 발레리아누스 황제가 직접 대군을 이끌고 동쪽으로 원정을 나섰다. 상대는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푸르 1세. 결과는 단순한 패배가 아니었다. 지금의 터키 에데사 근처에서 황제 본인이 생포당한 것이다. 로마 역사 전체를 통틀어 현직 황제가 적국의 포로가 된 건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샤푸르는 말에 오를 때마다 발레리아누스를 땅에 엎드리게 해 발판으로 삼았다고 한다. 로마 제국의 동쪽 절반이 한순간에 무방비 상태가 되었고, 지상 최강의 제국이 눈에 보이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바로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등장한 인물이 오다이나투스다. 그의 모국어인 아람어로는 '우다이나', 뜻은 '작은 귀'. 그는 시리아 사막 한가운데 자리 잡은 팔미라라는 도시의 지배자였다. 팔미라는 로마와 페르시아를 잇는 교역로 한복판에 있던 대상(隊商) 도시로, 어마어마한 부를 쌓고 있었다. 오다이나투스는 로마의 장군도 총독도 아니었다. 로마와 동맹을 맺은 아랍의 부속 왕, 쉽게 말해 지방 세력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가 이끄는 팔미라의 기마 궁수대와 중장 기병대는 당대 고대 세계에서 손꼽히는 정예 부대였다. 이 사내는 이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승부를 띄우려 하고 있었다.

오다이나투스는 처음에 외교로 풀어보려 했다. 황금과 은, 값비싼 사치품을 잔뜩 실은 대상을 샤푸르에게 보내 대화의 뜻을 전한 것이다. 돌아온 건 오만 그 자체였다. "오다이나투스 따위가 감히 자기 주군에게 글을 보내? 손을 묶고 기어서 와라." 그러고는 선물을 전부 유프라테스 강에 던져버렸다. 세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했던가 — 하지만 샤푸르는 단 한 번의 모욕으로 그 나무를 넘어뜨리는 대신 자기 쪽으로 쓰러지게 만들었다. 자신에게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을 회유할 기회를 날려버리고, 최악의 적으로 돌려세운 것이다.

오다이나투스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곧바로 전쟁을 택했다. 먼저 혼란을 틈타 황제를 참칭한 로마 반란군 둘을 격파해, 정통 로마 황제에 대한 충성을 행동으로 증명했다. 그런 다음 동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팔미라 정예 기병과 동맹 부족 전사들을 규합해 아무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일을 해냈다.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동진을 계속해,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크테시폰 — 지금의 바그다드 근처 — 성문 앞까지 밀어붙인 것이다. 주변을 초토화하고 전리품을 가득 챙겨 철수했다. 그리고 한 번 더 같은 걸 반복했다.

서쪽에서 자기 전쟁으로 정신이 없던 로마 황제 갈리에누스는 현명한 결정을 내렸다. 오다이나투스에게 '전(全) 로마 동방 총독'이라는 칭호를 내린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사막 대상 도시의 영주가 로마 제국 절반의 공식 통치자가 되었다. 하지만 오다이나투스가 스스로 내건 칭호는 한 수 위였다. 팔미라의 비문에는 '왕중왕'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 칭호는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 키루스 대왕 이래 페르시아 황제만이 사용해온 칭호다. 기어오라고 했던 그 남자가, 이제 그 말을 한 왕의 왕관을 빼앗으려 하고 있었다.

모든 게 서기 267년, 한 밤의 연회에서 끝났다. 오다이나투스와 장남 하이란이 그의 조카 마이오니우스에게 암살당한 것이다. 공식적인 이유는 사냥 도중 벌어진 사소한 말다툼이었다. 하지만 진짜 물어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아버지와 후계자가 같은 밤에 사라져서 가장 큰 이득을 본 사람이 누구인가. 답은 제노비아 — 오다이나투스의 두 번째 아내이자, 스스로 클레오파트라의 후손이라 자처한 여걸이었다. 하이란이 사라지자 그녀의 어린 아들이 왕위를 이었고, 실권은 제노비아의 손에 들어갔다. 마이오니우스는 그 직후 처형되었다. 누구의 명령으로 움직였는지 물을 사람은 이미 아무도 남지 않았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쓰린 대목은 마지막이다. 오다이나투스는 평생을 바쳐 로마 제국을 지켰다. 페르시아를 물리치고, 아무도 버틸 수 없었던 동부 방어선을 홀로 떠받쳤다. 로마도 줄 수 있는 모든 칭호와 영예를 그에게 안겼다. 그런데 그가 죽은 지 채 10년이 안 되어, 로마 군대가 팔미라로 진군해 들어와 도시를 약탈하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그가 목숨 걸고 구해낸 제국이, 그가 세운 도시를 제 손으로 부쉈다. 강자가 쓸모 있는 자에게 건네는 감사에는 언제나 유통기한이 붙어 있는 법이다.

이야기의 교훈

제국을 구한 사람이 꼭 황제가 되는 건 아니다 — 때로 그는 로마인이 읽지 못하는 문자로 이름이 새겨진 사막의 왕자일 뿐이다. 그리고 제국을 구해준 대가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순간 당신의 도시를 잿더미로 만드는 것이다.

등장인물

오다이나투스 — 팔미라의 지배자, 스스로 '왕중왕'을 자처한 인물
발레리아누스 황제 — 서기 260년 페르시아에 생포된 로마 황제
샤푸르 1세 — 사산조 페르시아의 '왕중왕'
갈리에누스 황제 — 오다이나투스에게 동방 전권을 부여한 로마 황제
하이란 — 오다이나투스의 장남, 아버지와 함께 암살당함
마이오니우스 — 암살자, 오다이나투스의 조카

출처

Historia Augusta, 'Life of Gallienus' and 'The Thirty Pretenders'; Zosimus, New History; Peter the Patrician, fragments; Shapur I, Res Gestae Divi Saporis (SKZ inscription, Naqsh-e Rostam); Lactantius, De Mortibus Persecutorum; Fergus Millar, The Roman Near East; Dodgeon and Lieu, The Roman Eastern Frontier and the Persian Wars (AD 226-363); Watson, Alaric, Aurelian and the Third Centu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