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신들과 괴물·4/5·3
Photograph of Palmyra

The place

Palmyra

벨 신전 — 2천 년을 버틴 것, 하루를 못 버틴 것

시리아 사막 한가운데, 동양과 서양이 만나던 신전의 마지막 날

32 AD (consecration) – August 30, 2015 (destruction by ISIS); survived 1,983 yearsPalmyra

기 32년, 예루살렘 성 밖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던 바로 그 시대. 시리아 사막 한복판의 도시 팔미라에서는 사제들이 거대한 신전을 완성했다. 바빌론의 마르둑과 그리스의 제우스를 닮았지만 어느 쪽도 아닌, '우주의 주인' 벨에게 바치는 신전이었다. 벨의 오른편에는 태양신, 왼편에는 달의 신이 섰다. 셋이서 하늘 전체를 다스렸다.

겉은 그리스 신전 같았다. 황금빛 기둥이 늘어서고, 형식은 익숙했다. 그런데 안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상식이 깨졌다. 입구가 엉뚱한 곳에 있었고, 천장은 평평했으며, 창문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고대 신전에서 빛이라니. 그리고 가장 깊은 곳, 천장에는 돌로 새긴 황도십이궁이 펼쳐져 있었다. 인류 최초의 별자리 천장 중 하나였다. 이 건물은 팔미라 그 자체였다. 동양과 서양 사이에 서서, 어느 편도 택하지 않은 도시.

이곳은 기도만 하는 곳이 아니었다. 잔치를 벌이는 곳이었다. 넓은 안뜰을 따라 연회장이 줄지어 있었고, 수백 명이 모여 양고기와 낙타 고기를 먹었다. 포도주가 돌고, 향이 피어올랐다. 부유한 시민들은 연회를 후원하고 자기 이름을 벽에 새겼다. 유적지에서는 수천 개의 작은 점토 조각이 발굴됐는데, 일종의 입장권이었다. 고기 굽는 냄새를 따라 걸어가, 신과 같은 식탁에 앉을 수 있는 표.

이 신전은 역사가 던진 모든 것을 견뎌냈다. 로마가 기독교로 돌아서자 교회가 됐고, 덕분에 살아남았다. 아랍 군대가 시리아를 점령하자 모스크가 됐고, 그래서 또 살아남았다. 성벽 안에 마을이 들어섰고, 2000년대 초반까지 지구에서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고대 신전 중 하나로 남았다. 로마제국, 십자군, 몽골 침략, 두 번의 세계대전. 전부 이겼다.

2015년 8월 30일. 이 신전을 50년간 지켜온 83세 고고학자 할레드 알아사드가 ISIS에 참수당한 지 열이틀 후, 전투원들이 건물에 폭약을 채워 넣고 기폭했다. 위성 사진이 확인해줬다. 내부 신전은 흔적도 없었다. 티베리우스 황제가 살아 있을 때 새겨진 별자리 천장은 먼지가 됐다. 기둥도, 조각도, 신들의 부조도 전부 사라졌다. 딱 하나, 정문 아치만 남았다. 잔해 위에 홀로 서서, 그 뒤에 텅 빈 하늘만 담고 있었다.

그 문은 21세기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됐다. 뒤에 아무것도 없는 입구. 벨 신전이 있던 세계와 없는 세계 사이의 경계선. 연회 입장권은 박물관 유리 안에 있고, 팔미라 사람들의 초상은 파리와 런던의 전시장에서 관객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로 모이던 장소, 사제가 향을 피우고 상인이 신과 함께 식사하던 그곳은 이제 시리아 사막의 돌무더기일 뿐이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2천 년을 버틴 신전을 폭파한 자들은 달랐다. 범이 무서운 줄 몰라서 덤빈 게 아니었다. 너무 무서웠던 거다. 자기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 자기들보다 오래 살아남을 것이 두려웠던 거다. 2천 년의 역사를 이긴 신전은 그렇게, 그것이 무엇인지 두려워한 자들의 하루를 이기지 못했다.

이야기의 교훈

하룻강아지는 범이 무서운 줄 몰라서 덤비는 게 아니다. 진짜 무서우니까 부수는 것이다.

등장인물

B
Bel (supreme deity of Palmyra, cognate with Babylonian Marduk)
Y
Yarhibol (sun god of the Palmyrene triad)
A
Aglibol (moon god of the Palmyrene triad)
T
The Palmyrene priests and their sacred banquet associations
I
ISIS militants (destroyers, August 2015)

출처

Seyrig, Henri; Amy, Robert; Will, Ernest. Le Temple de Bel a Palmyre, 1968/1975; Teixidor, Javier. The Pantheon of Palmyra, 1979; UNOSAT satellite imagery analysis, August-September 2015; UNESCO World Heritage Site inscription, 1980; Gawlikowski, Michał, excavation reports on the Temple of Bel; Browning, Iain. Palmyra, 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