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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과 저주·1/4·4
Photograph of Auschwitz-Birkenau Memorial

The place

Auschwitz-Birkenau Memorial

쌍둥이 막사

멩겔레의 쌍둥이들——용서를 무기로 택한 생존자

제2차 세계대전(1944–1945) 및 전후 증언Auschwitz-Birkenau Memorial

2차 세계대전 중, 나치는 점령한 폴란드에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죽음의 수용소를 세웠다.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약 23만 명의 아이들이 그곳으로 보내졌고, 20만 명 이상이 도착한 그날 바로 죽었다. 기차에서 내려 부모 손을 잡은 채, 온 가족이 가스실로 걸어갔다. 무슨 잘못을 해서가 아니다. 그저 ‘누구인가’가 이유의 전부였다.

하지만 가스실로 가지 않은 아이들이 있었다. SS 군의관 요제프 멩겔레가 골라낸 아이들이다. 수감자들은 그를 ‘죽음의 천사’라 불렀다. 멩겔레는 쌍둥이에 병적으로 집착했다. 열차가 도착할 때마다 가족들 사이를 걸으며 ‘Zwillinge! Zwillinge!’라 외치고는, 어머니 품에서 아이를 빼앗아 실험 막사로 보냈다.

약 1,500쌍의 쌍둥이가 그 막사를 거쳤다. 그가 한 건 의학이 아니었다. 흰 가운을 입은 고문이었다. 눈에 염료를 주사해 색깔을 바꾸려 했다. 혈액형이 다른 쌍둥이끼리 수혈했다. 한쪽에 병을 옮기고 건강한 쪽과 비교했다. 한 명이 죽으면 다른 한 명도 곧바로 죽여 해부했다. 살아남은 쌍둥이는 200명이 채 안 됐다.

에바와 미리암 모제스 자매는 그 생존자 중 둘이었다. 지금의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포르츠 마을 출신 열 살 쌍둥이. 1944년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날, 부모와 언니 둘은 가스실에서 숨졌다. 에바와 미리암은 멩겔레의 막사에서 몇 달간 주사, 채혈, 이해할 수 없는 실험을 견뎠다. 주사는 미리암의 신장을 돌이킬 수 없이 망가뜨렸다. 평생 따라다닐 상처였다.

1945년 1월 소련군이 수용소를 해방했다. 그 뒤 50년, 에바는 아우슈비츠가 남긴 것들과 함께 살았다. 악몽. 분노. 가족은 죽고 나만 살았다는 죄책감. 수용소가 살려둔 사람들에게 남긴 진짜 상처였다. 그리고 1995년, 에바는 선택 하나를 했다. 그녀가 겪은 어떤 일보다 세상을 놀라게 한 선택을.

나치를 용서한 것이다.

아우슈비츠 해방 50주년. 에바는 한때 갇혀 있던 그 자리에 섰다. 옆에는 수용소에서 근무했던 독일인 의사 한스 뮌히. 에바는 카메라 앞에서 용서 선언문을 읽고 서명했다. 반발은 순식간이었다. ‘용서할 권리는 당신에게 없다, 죽은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다’는 이들, ‘살인자를 봐주는 거냐’고 따지는 이들이 있었다.

에바의 대답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내가 용서하는 건 그들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내가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고통에서 벗어날 자격이 있습니다.’ 용서란 가해자를 봐주는 게 아니었다. 이미 죽은 사람에게 더 이상 자기 인생을 휘두르게 놔두지 않겠다는 거부였다. ‘세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했다. 나치는 셀 수 없이 에바를 찍었고, 에바는 쓰러졌다. 하지만 속담이 말해주지 않는 게 있다. 쓰러진 나무도 다시 뿌리를 내린다는 것. 에바는 증오 대신 용서로 일어섰다. ‘분노와 증오는 전쟁의 씨앗입니다. 용서야말로 평화의 씨앗입니다.’

2019년, 에바 모제스 코르는 아우슈비츠를 다시 찾는 여행 중에 85세로 세상을 떠났다. 수십 년간 그녀는 같은 문을 지나, 같은 막사에서 학생들과 생존자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 답은 아직 없다. 하지만 용서란 나를 해친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믿음—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곳에서 태어난 가장 강한 한마디다.

이야기의 교훈

용서란 가해자에 대한 판결이 아니라 피해자의 자유 선언이다——증오의 감옥에서 스스로를 풀어주는 선택이야말로 생존자의 마지막 승리다.

등장인물

에바 모제스 코르
미리암 모제스
요제프 멩겔레
한스 뮌히
1
1,500쌍의 쌍둥이들

출처

Eva Mozes Kor, Surviving the Angel of Death; Auschwitz-Birkenau Memorial archives; USC Shoah Foundation testimon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