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090년 9월 4일, 한 남자가 페르시아에서 가장 삼엄하게 지켜지던 요새의 문을 걸어서 통과했다. 뒤에 군대는 없었다. 손에 칼도 없었다. 땅에 피 한 방울 떨어지지 않았다. 그 요새의 이름은 알라무트. 골짜기에서 200미터 높이 솟아오른 칼날 같은 바위 위에 세워진 성으로, 워낙 외진 곳이라 정확한 지도가 나오기까지 800년이 더 걸렸다. 그 남자의 이름은 하산 사바흐. 그가 그날 밤 해낸 일은, 아마 중세 역사상 가장 기막힌 무혈 쿠데타일 것이다.
하산은 대략 1050년, 지금의 이란 쿰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배움에 미친 사람이었다. 철학, 수학, 천문학——닥치는 대로 공부했다. 그러다 한 전도사를 통해 이스마일파를 알게 된다. 당시 중동을 지배하던 셀주크 투르크 제국에 맞서는 이슬람교의 한 분파였다. 하산이 개종하는 순간, 그는 수배자가 됐다. 셀주크의 재상이 직접 체포를 명령했다.
하산은 카이로로 도망쳤다. 그곳의 학문의 전당에서 공부하고, 칼리프의 신임을 얻고,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궁정 정치에 휘말려 적을 만들었고, 감옥에 갇혔다가 이집트에서 추방당했다. 돌아오는 길에 난파까지 당했지만 살아남아 1081년에 페르시아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무도 예상 못한 일을 했다. 숨지 않았다. 9년 동안 산을 넘고 변장을 하며 마을마다 비밀 조직을 만들었다. 목표는 단 하나——절대 뚫리지 않는 요새를 찾는 것.
찾은 곳이 알라무트 골짜기였다. 해발 3천 미터 봉우리들 사이에 끼인 좁고 긴 초록빛 땅. 유일한 고갯길은 1년 중 반은 눈으로 막혀 있었다. 그 한가운데, 톱날처럼 생긴 바위 능선 위에 알라무트 성이 서 있었다. 하산은 군대를 모으지 않았다. 주변 마을에 전도사를 보내고, 성 안에 자기 사람을 경비병과 하인으로 심었다. 자신은 근처 마을에서 2년간 훈장 노릇을 하며 모두의 신뢰를 얻었다. 모든 수를 외과 수술처럼 정밀하게 놓았다.
세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했다. 하산은 세 번이 아니라 9년을 찍었다. 그런데 나무가 넘어진 게 아니다——나무가 스스로 문을 열었다. 그 9월 밤, 하산이 성문을 지날 때 경비병들은 이미 그를 알았고, 신뢰했고, 사실상 그의 사람이었다. 성주 마흐디는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돌아와 보니 자기 경비병과 하인들이 전부 다른 사람 말을 듣고 있었다. 하산은 금화 3천 디나르짜리 어음을 내밀었다. 성값이라며. 마흐디는 주변을 둘러보고, 돈을 받고, 떠났다. 페르시아에서 가장 무서운 요새가 주먹 한 번 날리지 않고 주인이 바뀌었다.
하산은 다시는 알라무트를 떠나지 않았다. 그 후 34년, 112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성 안에 머물렀다. 방에서 나온 건 딱 두 번, 둘 다 옥상에 올라간 것뿐이었다. 그는 이슬람 세계 최고 수준의 도서관을 세웠고, 200개가 넘는 산악 요새로 세력을 넓혔고, 정밀한 암살을 수행하는 충성스러운 요원들을 길러냈다. 그 이름 ‘아사신’은 모든 유럽 언어에서 ‘암살자’라는 단어의 어원이 됐다. 수도승처럼 살다가, 나라의 창건자로 죽은 사람이었다.
하산은 성을 공격해서 뺏은 게 아니다. 성이 스스로 깨닫게 만든 것이다——이미 그의 것이었다는 걸. 고대 페르시아어로 ‘독수리의 가르침’이라는 뜻의 알라무트, 그 독수리의 둥지는 그 9월 밤 이후 166년간, 지구상 어떤 제국도 되찾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