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0년, 하산이 사바흐라는 남자가 알라무트 성을 점령했다. 페르시아 북부 절벽 위에 세워진 요새로, 너무 높아서 사람들이 ‘독수리 둥지’라고 불렀다. 이곳을 거점으로 그는 중세에서 가장 두려운 조직을 세웠다. 니자리 이스마일파——시아파에서 갈라져 나온 분파로, 중동 최고 권력자들을 하나씩 암살해 나갔다. 하지만 하산 자신은 군벌과는 거리가 멀었다. 거친 옷에 소박한 밥, 하루 종일 서재에 틀어박혀 공부만 했다. 그리고 딱 하나, 철칙을 세웠다. 그 누구도——누구든——법 위에 설 수 없다.
처음부터 증명해 보였다. 기도 시간을 알리는 사람이 몰래 피리를 불다 걸렸다——큰 죄도 아니었다. 하산은 그를 영원히 성에서 내쪻았다. 몰래 술을 마신 남자는 처형했다. 알라무트에서 음주의 대가는 추방이 아니었다. 매질도 아니었다. 목숨이었다. 성 안의 모든 사람이 규칙을 알았다. 아무도 몰랐던 건, 이 남자가 대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였다.
하산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무함마드와 우스타드 후사인. 어느 왕국에서든 당연한 후계자들이다. 하지만 하산은 처음부터 못을 박았다. 왕조를 세울 생각이 없다고. 자신은 숨은 이맘——언젠가 돌아올 것이라 뼈어지는 영적 지도자——을 대신해 이 성을 지킬 뿐이라고. 아들에게 권력을 넘기는 순간, 그의 모든 말은 거짓이 된다. 종교를 사익에 이용하는 그저 그런 군벌이 되는 거다. 적들은 이미 뒤에서 그렇게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들 무함마드가 그 하나,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금기를 깨버렸다. 성 안에서 술을 마신 것이다. 아버지가 이미 같은 죄로 사람을 죽인 바로 그 금기를. 재판 기록은 없다. 변론 기록도 없다. 역사에 남은 건 결과뿐이다. 하산이 사바흐는 자기 친아들을 처형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다. 하지만 알라무트에서는 법이 피보다 진했다.
두 번째 타격은 더 어두웠다. 남은 유일한 아들 우스타드 후사인이 후사인 카이니——동부 페르시아 작전을 총괄하던 핵심 지휘관——의 살해에 가담한 협의를 받았다. 협의가 사실이었을까, 정적들의 모함이었을까. 지금은 알 수 없다. 모든 사료를 분석한 역사학자 버나드 루이스는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라고 결론 내렸다. 어느 쪽이든 결말은 같았다. 하산은 둘째 아들도 처형했다. 두 후계자 모두, 사라졌다.
이슬람 세계 전체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자기 아들 둘을 모두 죽인 통치자라니——그것도 하나는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해석은 둘로 갈린다. 하산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괴물이었거나, 자기 원칙이 진짜임을 증명하기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부수는 각오가 되어 있었거나. 적들은 전자를 택했고, 추종자들은 후자를 택했다. 니자리 신도들에게 이것은 최종 증거가 되었다. 알라무트의 법은 벽에 써 붙인 구호가 아니었다.
1124년 6월, 죽음을 앞둔 하산은 조카도 사촌도 지목하지 않았다. 가장 신뢰하는 네 명의 장수를 불러, 키야 부주르그 움미드——혈연 관계가 전혀 없는 충직한 무장——을 다음 성주로 임명했다. 마지막 지시는 이것이었다. ‘이맘이 오셔서 왕국을 인수하실 때까지, 함께 지켜라.’ 그는 아버지가 치를 수 있는 가장 처참한 대가를 치르고, 아무도 이것을 가업이라 부를 수 없게 만들었다.
독수리 둥지 그늘 아래, 서재에서 홀로 죽었다. 안락도, 혈통도, 어짜면 인간다움까지도 내려놓은 남자. 단 하나의 뿰음을 위해. 법 앞에 예외는 없다. 병사도. 동맹도. 그리고 아들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