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840년 무렵의 일이다. 와흐수단이라는 이름의 통치자가 카스피해 남쪽 산악 지대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 이란에서도 특히 험준한 이 지역은 아랍 대군조차 정복하지 못한 땅이었다. 그때 그의 눈앞에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거대한 독수리 한 마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골짜기 바닥에서 200미터나 치솟은 칼날 같은 바위 위에 내려앉은 것이다. 와흐수단은 그 바위를 올려다보았다. 삼면은 깎아지른 절벽, 접근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 아래로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단번에 알아챘다. 그 새가 방금 난공불락의 요새를 어디에 지어야 하는지 알려준 것이다.
그는 그 자리에 요새를 지었다. 그리고 이 가르침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붙였다. 현지 다일람 방언으로 '알루흐'는 독수리, '아무흐트'는 가르침이라는 뜻이었다. 알루흐 아무흐트 — 독수리의 가르침. 수백 년 동안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빠르게 불리다 보니 결국 한 단어가 되었다. 알라무트. 이 요새는 250년 동안 지방 통치자들의 손을 거치며, 숨겨진 골짜기 속 거의 아무도 모르는 완벽한 성채로 존재했다.
그러다 1090년, 모든 것이 뒤집혔다. 하산 사바흐라는 이름의 망명 설교자 — 이슬람교 시아파의 급진 분파인 이스마일파의 지도자 — 가 골짜기로 몰래 들어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성을 손에 넣었다. 그는 알라무트를 거의 200년 동안 중세 세계 전체를 벌벌 떨게 만든 운동의 본부로 바꿔 놓았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가장 기이한 부분은 따로 있다.
이슬람 전통에서는 아랍 문자 하나하나에 숫자 값이 매겨져 있다. 중세 학자들이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옛 다일람어 이름 — 알루흐 아무흐트 — 의 글자를 숫자로 바꿔 더하면 합계가 정확히 483이 된다. 하산이 알라무트를 손에 넣은 해는? 이슬람력 483년. 와흐수단이 하산이 태어나기 250년 전에 지은 이름 속에, 이 성을 전설로 만들 사건의 날짜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던 것이다. 우연인지 운명인지는 믿는 사람 마음이다. 이스마일파 사람들에게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1256년, 몽골군이 왔다. 성벽을 허물고, 전설적인 도서관을 불태우고, 수비대를 몰살했다. 산과 일 년의 절반은 홍수로 막혀버리는 협곡에 둘러싸인 이 골짜기는 다시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뒤 거의 700년 동안 알라무트는 전설로만 남았다. 마르코 폴로가 지어낸 약에 취한 암살자와 낙원 정원 이야기의 배경,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유럽 작가들이 돌려쓰는 이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 알라무트에게 그 구멍이 열리기까지 700년이 걸렸다.
1930년, 서른일곱 살의 영국 여성 프레야 스타크가 바그다드에서 노새 한 마리에 올라타고 출발했다. 간이침대, 모기장, 그리고 반드시 '암살자의 골짜기'를 찾겠다는 의지. 그녀는 독학으로 지도 제작을 익힌 모험가였고, 유럽 남자들도 들어가기 겁내는 중동 오지를 이미 탐험한 사람이었다. 말라리아에 시달리면서 산길을 넘었고, 안내인마다 같은 언덕을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마침내 그 바위에 도착했을 때, 공식 지도가 완전히 틀렸다는 걸 알아냈다 — 그리고 직접 고쳤다. 그녀가 쓴 책 한 권이 알라무트를 세상에 다시 불러냈다.
오늘날, 원래 요새의 약 30퍼센트가 골짜기 위 바위 위에 남아 있다. 방문객들은 200미터에 달하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 무너진 벽과 폐작업장, 그리고 하산의 기술자들이 절벽에 파낸 수로 — 천 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작동하는 — 를 만난다. 하지만 정상에 서서 정말로 눈길을 끄는 건 폐허가 아니다. 검독수리다. 여전히 거기 있다. 봉우리 위를 바람을 타고 선회하며, 1200년 전 와흐수단이 사냥하던 바로 그 골짜기를 내려다보고 있다. 독수리는 제대로 된 곳을 골랐다. 그 가르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