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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관과 정복·4/5·8
Photograph of Masada

The place

Masada

마사다는 다시 함락되지 않으리

잊힌 고대 비극이 한 민족의 가장 강력한 상징으로 다시 태어나고 -- 다시 그 민족의 가장 깊은 질문을 비추는 거울이 된 이야기

1927년(람단의 시)부터 현재까지 -- 신화 만들기와 질문의 한 세기Masada

19세기 동안 유대인은 마사다를 잊었다. 완전한 망각이었다. 유대 종교 생활의 토대인 방대한 랍비 문헌 탈무드는 마사다를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다. 미슈나도 침묵한다. 중세의 위대한 학자들도 침묵한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기록은 요세푸스의 것이다 -- 로마에 항복하고, 자기 민족이 노예로 팔려가는 동안 로마에서 편안하게 살았던 유대인 장군. 유대 전통에서 그는 배신자였다. 그의 책을 보존한 건 유대인 필사가가 아니라 기독교 수도원이었다. 서기 70년 성전 파괴 후 유대 문명을 재건한 랍비들은 의식적인 선택을 했다. 마사다가 아니라 야브네를 택한 것이다. 야브네에서 한 현자가 로마인과 협상해 학당을 열 허가를 받았다. 칼 대신 학문, 죽음 대신 적응. 그들은 텍스트와 율법으로 이뤄진 이동식 문명을 만들었고, 그것은 땅도 군대도 없이 2천 년을 버텼다.

마사다의 부활은 한 편의 시에서 시작됐다. 1927년, 러시아 내전의 학살을 피해 팔레스타인으로 건너간 우크라이나 작가 이츠하크 람단이 단순한 제목의 서사시를 발표했다 -- 《마사다》. 역사 서술이 아니라 은유였다. 팔레스타인은 세상의 모든 문이 닫힌 뒤 남은 마지막 요새, 마지막 피난처. 람단의 형제는 학살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는 유대인에게 피할 곳이 없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었다. 그의 시에서 전쟁의 함성이 된 한 구절이 태어났다 -- 메차다 로 티폴 셰니트, '마사다는 다시 함락되지 않으리.' 10년 안에 팔레스타인의 모든 유대인 학교가 이 시를 가르쳤고, 마사다는 잊힌 각주에서 탄생하는 민족의 심장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시에는 장소가 필요했다. 슈마리아후 구트만이 그것을 마련했다. 교육자, 고고학자, 그리고 훗날 이스라엘 군의 핵심이 될 정예 부대 팔마흐의 지휘관이었던 구트만은 풍경의 힘을 이해했다. 1930년대부터 그는 시오니스트 청년들을 위한 행군을 조직했다. 유대 사막을 수일간 걷고, 어둠 속에서 횃불을 들고 뱀의 길을 올라, 새벽에 정상에 도착하는 것. 아래로 사해가 빛나는 그곳에서 그는 요세푸스의 발췌문을 읽었다 -- 시카리의 학살이 삭제된 편집본으로 -- 그리고 람단을 낭송했다. 땅에 대한 충성 서약이 이어졌다. 거의 종교적인 의식이었다. 어둠에서 빛으로, 유배에서 구원으로.

한국 속담에 '세 번째가 진짜'라는 말이 있다. 마사다는 고대의 함락을 겪었고, 19세기의 망각에 빠졌다. 세 번째는 몰락이 아니었다 -- 역사상 가장 극적인 부활이었다. 1948년 이스라엘 독립 후 국가는 마사다를 공식 의식으로 만들었다. 기갑부대 신병들은 밤에 산을 올라, 한 손에 소총, 다른 손에 히브리 성경을 받고, 해가 뜨면 사막을 향해 외쳤다 -- '마사다는 다시 함락되지 않으리!' 모든 군인은 마지막 수비자들이 섰던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다고 느꼈다. 수십 년간 이것은 이스라엘 군사 문화에서 가장 강렬한 의식 중 하나였다.

균열은 천천히 나타났다가 갑자기 번졌다. 1966년, 트루데 바이스-로즈마린이 파괴적인 에세이를 발표했다 -- '마사다인가 야브네인가?' 그 논지는 단순했지만 치명적이었다. 학문과 생존을 택한 야브네의 랍비들은 2천 년간 유대 민족의 존속을 보장했다. 죽음을 택한 마사다의 시카리는 자신들의 멸망 외에 아무것도 보장하지 못했다. 현대 국가는 어떤 모델을 따라야 하는가? 1982년 레바논 전쟁이 의문을 깊게 했다. 1987년 제1차 인티파다가 더 심화시켰다. 1990년대가 되자 군은 주요 선서식을 마사다에서 라트룬으로 조용히 옮겼다. 공식 발표 없이. 더 이상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전통을 부끄러워하는 듯했다.

1995년, 사회학자 나흐만 벤예후다가 《마사다 신화》를 출간하며 시인, 교육자, 군인, 정치인들이 이념적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서사를 구축한 과정을 냉혹한 정밀함으로 기록했다. 시카리는 엔게디에서 유대인 민간인 700명을 학살한 테러리스트였다. 집단 자살은 유대 율법에 위배되었다. 요세푸스는 신뢰할 수 없었다. 유명한 고고학자 야딘은 발굴 결과를 국가 서사에 맞게 다듬었다. '마사다 콤플렉스'라는 개념이 정치 어휘로 들어왔다 -- 모든 갈등을 최후의 전투로 만들고 평화를 불가능하게 하는 전부 아니면 전무의 심리.

오늘날 마사다는 람단도 구트만도 이해하지 못했을 의미의 층위 속에 서 있다. 유네스코는 2001년 신중하고 중립적인 언어로 세계유산에 등재했다. 매년 약 75만 명이 산에 오른다 -- 일부는 새벽 전 뱀의 길로, 대부분은 1971년에 설치된 케이블카로. 이스라엘 학생 단체들은 여전히 오지만, 교사들은 더 복잡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국 유대인 청소년들은 고대 회당에서 성인식을 치른다. 그리고 이스라엘 박물관 어딘가, 유리 너머에 이름이 새겨진 열한 개의 도자기 파편이 침묵 속에 기다리고 있다 -- 2천 년간 기다려온 것처럼 -- 누군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결정해주기를.

이야기의 교훈

민족은 존재하기 위해 이야기가 필요하지만, 어떤 이야기를 선택하는지 신중해야 한다. 한 세대에 영감을 주는 신화가 다음 세대를 가둘 수 있다. 가장 큰 용기는 산꼭대기에서 죽는 것이 아니라, 그 산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묻는 것 -- 그리고 민족이 그 답을 감당할 만큼 강하다는 걸 발견하는 것일지 모른다.

등장인물

이츠하크 람단 -- 1927년 서사시 '마사다'를 쓴 우크라이나 출신 시인
슈마리아후 구트만 -- 마사다 순례를 만들어낸 교육자이자 팔마흐 지휘관
이가엘 야딘 -- 고고학자이자 이스라엘 국방군 전 참모총장
나흐만 벤예후다 -- 마사다 신화를 해체한 사회학자
트루데 바이스-로즈마린 -- 1966년 '마사다인가 야브네인가?'를 제기한 학자

출처

Lamdan, Yitzhak. 'Masada' (poem), 1927; Ben-Yehuda, Nachman. The Masada Myth: Collective Memory and Mythmaking in Israel,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1995; Weiss-Rosmarin, Trude. 'Masada and Yavneh,' Jewish Spectator, 1966; Zerubavel, Yael. Recovered Roots: Collective Memory and the Making of Israeli National Traditi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5; Magness, Jodi. Masada: From Jewish Revolt to Modern Myth,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9; UNESCO World Heritage Nomination Dossier #1040,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