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밀림 한가운데, 높이 200미터짜리 바위가 솟아 있다. 그 바위 중턱, 절벽이 움푹 파인 좁은 공간 안에 열아홉 명의 여인이 그려져 있다. 대략 1,500년 전부터 거기 있었다. 황금빛 피부에 허리 위로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고, 목에는 진주와 금이 무겁게 늘어져 있다. 허리 아래는 구름이 감싸고 있어 보이지 않는다. 꽃을 든 여인, 공양물을 받쳐 든 여인, 그리고 그냥 이쪽을 바라보는 여인. 입가에는 끌어당기면서도 밀어내는 듯한 반쯤의 미소가 걸려 있다. 이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더 놀라운 건 따로 있다. 이 열아홉 명은 살아남은 자들일 뿐이다. 원래는 바위 서쪽 면 전체——5,000제곱미터가 넘는 면적——에 500명이 넘는 여인이 가득 그려져 있었다. 산 아래 정원부터 꼭대기 성문까지, 수백 명의 황금빛 여인이 채색된 구름 속에 떠 있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이걸 만든 건 카샤파 1세. 서기 477년 무렵, 아버지에게서 왕위를 빼앗고 이 바위를 자기 왕도로 바꾼 왕이다. 절벽에 여인 500명을 그렸다. 지금은 열아홉 명만 남았다.
그래서 이 여인들은 대체 누구인가. 학자들이 100년 넘게 싸워 왔다. 첫 번째 주장——카샤파 궁정의 실존 인물이라는 것이다. 왕비, 후궁, 궁녀들이 근처 사원에 공양물을 들고 가는 모습이라고 했다. 쟁반은 설명이 된다. 하지만 구름은? 실제 사람이 왜 구름 속에 떠 있겠는가. 두 번째 주장——힌두교와 불교 신화에 나오는 천녀라는 것이다. 구름 사이에 살면서 땅 위에 꽃을 뿌리는 존재. 이건 딱 들어맞았고, '구름 속 여인들'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나왔다.
세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 수수께끼는 달랐다. 세 번째 이론이 가장 대담했지만, 그래도 나무는 넘어가지 않았다. 스리랑카 최고의 고고학자 세나라트 파라나비타나는 수십 년을 이 유적에 바쳤고,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이 여인들은 사람도 아니고 신도 아니다——날씨다. 피부가 어두운 상은 비구름이고, 밝은 상은 번개다. 합치면, 매년 몬순 철에 이 바위를 감싸는 열대 폭풍 그 자체다. 카샤파는 바위 위에 요새만 세운 게 아니다. 자기만의 하늘을 그렸다.
이 벽화는 1,500년간의 열대 몬순을 버텨 냈다. 당시 장인들이 바위에 새긴 배수로가 빗물을 흘려보냈고, 그건 오늘날에도 작동한다. 그런데 자연이 가장 큰 적은 아니었다. 1967년, 누군가가 벽화를 공격했다. 두 인물의 일부를 뜯어냈고, 나머지 열다섯 점에 녹색 페인트를 끼얹었다. 그 상처는 돌이킬 수 없었다. 원래 500점이 넘던 그림에서 절벽 틈에 살아남은 건 겨우 열아홉. 1,500년이 지난 지금도 색은 여전히 따뜻하다.
모든 이론이 나왔지만, 증명된 건 하나도 없다. 여인들은 그저 그려진 구름 속에 떠서, 온몸에 금은보화를 두르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반쯤의 미소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고고학자들은 바위 아래에서 흙으로 빚은 작은 복제품을 발굴했다——기념품이다. 6세기부터 이미 팔리고 있었다. 1,500년 동안 사람들은 이 바위를 올랐고, 올라갈 때보다 더 많은 질문을 안고 내려왔다. 구름 속 여인들은 비밀을 지키고 있다. 늘 그래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