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이 넘도록 고대 세계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왕이 아니었다. 장군도 아니었다. 한 여자였다. 그리스 델포이 신전 깊은 곳,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지하 방. 바위 틈에서 올라오는 기체를 들이마시며 세 발 의자 위에 홀로 앉은 여자. 이름은 피티아, 델포이의 신탁이었다. 그녀가 입을 열면 사람들은 예언의 신 아폴론이 직접 말하는 것이라 믿었다. 왕들이 대륙을 건너고 몇 달을 기다린 건 오직 그녀에게 질문 하나를 던지기 위해서였다.
피티아는 반드시 델포이 출신 여성이었다. 처음엔 젊고 결혼하지 않은 여자만 뽑았다. 그런데 한번은 외지에서 온 남자가 피티아를 해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 뒤로는 쉰 살이 넘은 여성만 선발했고, 다만 처녀의 흰 옷은 그대로 입혔다. 한번 뽑히면 모든 게 끝이었다. 집도 버리고, 가족도 떠나고, 이름도 잃었다. 이제 그녀는 아폴론의 것이었다. 죽는 날까지 신의 입으로 사는 삶이었다.
의식은 한 달에 딱 한 번, 아폴론의 신성한 숫자인 7일에 치러졌다. 피티아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차가운 산속 샘물에 몸을 씻은 뒤, 신전에서 가장 깊고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방으로 내려갔다. 바위가 갈라진 틈 바로 위에 놓인 세 발 의자에 앉으면, 아래에서 달콤한 냄새의 기체가 피어올랐다. 월계수 잎을 씹고 성수를 마시면, 그녀는 서서히 이 세상이 아닌 어딘가로 빠져들었다.
그다음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피티아의 몸이 떨리기 시작하고, 비명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목소리는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말은 뒤엉키고 부서져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옆에 선 사제들은 한마디도 놓치지 않았다. 그들이 피티아의 외침을 받아 적고 다듬으면, 수수께끼 같은 예언이 탄생했다. 세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지만, 피티아는 달랐다. 단 한마디면 제국이 넘어갔다. 신탁은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다만 진실에 두 가지 뜻을 심었을 뿐이다.
그 수수께끼들이 실제로 역사를 바꿨다. 당시 세계 최고 부자이자 리디아의 왕이었던 크로이소스가 페르시아를 공격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신탁의 대답은 이랬다. "강을 건너면 거대한 제국이 무너지리라." 크로이소스는 자신만만하게 군대를 이끌고 강을 건넜다. 무너진 건 그 자신의 제국이었다.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대군이 그리스로 밀려왔을 때 신탁은 "나무 벽을 믿으라"고 했다. 장군 테미스토클레스는 그게 전함을 뜻한다고 주장했고, 아테네는 모든 것을 바다에 걸었다.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함대는 박살 났다.
그래서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2001년, 과학자들이 신전 터 바로 아래에서 두 개의 단층선이 교차하는 걸 발견했다. 그 갈라진 틈으로 에틸렌이라는 가스가 새어 나올 수 있는데, 조금만 마셔도 몸이 붕 뜨고 정신이 몽롱해진다고 한다. 고대 기록에 묘사된 피티아의 상태와 놀라울 만큼 일치했다. 결국 가스에 취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무언가가 그녀를 통해 말한 것일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사람들은 믿었고, 그 믿음이 군대를 움직이고 왕국을 허물었다.
끝은 서기 393년에 찾아왔다.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그리스 옛 종교의 흔적을 남김없이 지우려 했다. 그가 델포이로 사람을 보내 물었다. 신탁에게 아직 할 말이 남았느냐고. 피티아의 마지막 대답은 역사에 남은 가장 서늘한 작별이다. "황제에게 전하라. 위대한 전당은 무너졌고, 아폴론에게는 더 이상 지붕도, 성스러운 월계수도, 말하는 샘도 없다. 물마저 침묵했다." 천 년을 이어 온 신의 목소리는 그렇게 꺼졌다. 다시는 들리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