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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관과 정복·2/2·2
Photograph of Saint Basil's Cathedral

The place

Saint Basil's Cathedral

스탈린: "다시 놔둬"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을 살린 한마디

1930sSaint Basil's Cathedral

1930년대, 스탈린은 모스크바를 통째로 뜯어고치고 있었다. 오래된 교회? 폭파. 수도원? 밀어버렸다. 세계 최대의 정교회 성당이었던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은 다이너마이트로 날려버렸다. 그 자리에 '소비에트 궁전'이라는 거대한 정부 청사를 짓겠다고 했다. 결국 건물은 올라가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구덩이로 남아 있다가, 마지막엔 야외 수영장이 됐다. 그 시절 모스크바의 분위기가 그랬다. 과거는 지운다. 전부 새로 시작한다.

철거를 지휘한 건 라자르 카가노비치. 스탈린의 최측근이자, 소련 역사상 가장 무서운 '도시 계획가'였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모스크바의 현대화. 그가 생각하는 '현대'란, 탱크가 지나갈 수 있는 넓은 도로, 군사 퍼레이드용 초대형 광장, 그리고 종교 건물은 단 하나도 없는 도시였다. 어느 날, 카가노비치는 정교하게 만든 붉은 광장 축소 모형을 들고 스탈린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모형을 탁자 위에 놓았다. 크고, 깔끔하고, 완벽한 소비에트 설계. 탱크가 막힘없이 통과할 수 있고 병사들이 도열할 수 있는 광장. 그런데 뭔가 빠져 있었다. 성 바실리 대성당——붉은 광장 끝에 서 있는, 사진에서 분명히 본 적 있을 알록달록한 양파 지붕 성당——이 없었다. 카가노비치가 슬쩍 모형에서 빼버린 거였다. 의미는 하나. 철거.

여기서부터가 모두가 기억하는 장면이다. 카가노비치가 모형 위의 작은 성당을 아무렇지 않게 집어 올렸다. 별것 아닌 장식을 치우듯이. 스탈린이 그를 멈춰 세웠다. "Лазарь, поставь на место." ——라자르, 다시 놔둬.

성당이 살아남은 데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표트르 바라노프스키라는 건축가——평생을 러시아 문화유산 보호에 바친 사람——가 성 바실리 대성당의 철거 준비를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거부했다. 스탈린에게 전보를 보내, 이걸 부수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5년 동안 강제 노동 수용소에 갇혔다. 하지만 성당에는 아무도 손대지 못했다.

두 이야기는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둘 다 사실일 수 있다. 확실한 건 이거다. 모스크바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건물들을 줄줄이 잃고, 동네 하나가 하룻밤 사이에 통째로 사라지던 그 10년 동안, 성 바실리 대성당은 살아남았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이 건물도 끝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세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했다. 스탈린은 세 번이 아니라 수십 번을 찍었다. 교회란 교회는 전부 쓰러뜨렸다. 그런데 이 나무만은 안 넘어갔다. 왜였을까.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을 날려버리면, 아무리 스탈린이라도 정치적으로 감당이 안 된다는 걸 알았을 수도 있다. 정말로 아름답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아니면——사람들 마음에 가장 오래 남는 해석인데——대부분의 독재자가 끝내 깨닫지 못하는 걸, 이 남자는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나라는 지배할 수 있어도, 나라의 영혼은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오늘도 성 바실리 대성당은 붉은 광장 한쪽에 서 있다. 1561년에 세워진 바로 그 자리에. 나폴레옹의 대군을 견뎌냈고, 소련의 철거 광풍을 견뎌냈고, 수백만 명의 목숨을 눈 하나 깜짝 않고 앗아간 독재자마저——이 건물 하나만은 부수지 못했다. 어떤 것들은, 권력보다 크다.

이야기의 교훈

나라는 지배할 수 있어도, 그 영혼은 지울 수 없다. 한 민족의 뿌리 깊이 새겨진 것 앞에서는, 절대 권력도 멈출 수밖에 없다.

등장인물

이오시프 스탈린
라자르 카가노비치
표트르 바라노프스키 (건축가)

출처

Various accounts, some disputed; Baranovsky's arrest is documen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