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든버러 성에 붉은 사암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무게는 약 152킬로그램. 별볼일 없는 돌덩이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돌이 천 년 넘게 한 가지 일을 해 왔습니다. 누가 왕이 될 자격이 있는지 결정하는 일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역대 왕들은 퍼스셔의 스쿤 수도원에서 이 돌 위에 앉아 대관식을 올렸습니다. 진짜 왕이 앉으면 돌이 소리를 내고, 가짜가 앉으면 침묵한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이것이 '운명의 돌'입니다. 그리고 이 돌의 이야기는 어떤 드라마보다 극적입니다.
1296년,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1세가 스코틀랜드를 쳐들어왔습니다. 얼마나 잔인했는지 별명이 '스코틀랜드의 망치'였습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이 돌을 가져가는 것이었습니다. 돌이 탐나서가 아닙니다. 스코틀랜드가 제 손으로 왕을 세울 수 있는 권리 자체를 빼앗은 겁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참나무 의자를 만들게 하고, 그 아래에 돌을 끼워 넣었습니다. 이후 모든 잉글랜드 왕은 스코틀랜드의 가장 신성한 물건 위에 앉아 즉위했습니다.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너희 나라는 내 것이고, 너희 돌은 내 발받침이다. 1308년부터 모든 영국 군주가 이 의자에서 대관식을 올렸습니다.
이 돌의 유래는 두 나라의 싸움보다 훨씬 오래되었습니다. 중세 연대기 작가들은 이 돌을 성경의 「창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야곱이라는 사람이 베델이라는 곳에서 돌을 베고 잠들었는데, 하늘까지 닿는 사다리 위로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다리 꼭대기에서 야곱에게 이 땅을 약속했고, 야곱은 깨어나 그 돌을 성스러운 것으로 선포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이 돌은 이집트, 스페인, 아일랜드를 거쳤습니다. 아일랜드의 타라 언덕에서는 상왕의 대관석으로 쓰였고, 기원후 500년쯤 스코틀랜드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정말 흥미진진해집니다. 1950년 크리스마스. 스코틀랜드 대학생 네 명이 한밤중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몰래 잠입했습니다. 이끈 사람은 이언 해밀턴, 25살 법학도였습니다. 대관식 의자 아래에서 돌을 뜯어냈는데, 그 과정에서 돌이 두 쪽으로 쪼개졌습니다. 빌린 포드 앵글리아에 조각들을 싣고 겨울밤의 어둠 속을 북쪽으로 달렸습니다. 경찰 검문을 피해 가면서. 스코틀랜드는 속으로 환호했고, 잉글랜드는 분노했습니다. 영국 역사상 가장 큰 수색이 시작되었습니다.
몇 달이 지나도 돌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글래스고의 석공 로버트 그레이가 몰래 두 조각을 이어 붙여 수리했습니다. 그리고 1951년 4월 11일, 운명의 돌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스코틀랜드 국기에 감싸여, 아브로스 수도원의 제단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 장소가 뜻깊은 이유가 있습니다. 1320년, 바로 이곳에서 스코틀랜드 귀족들이 '아브로스 선언'에 서명하며 교황에게 선언했습니다. 스코틀랜드는 절대 잉글랜드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학생들의 신원은 밝혀졌지만 기소되지 않았습니다. 재판을 하면 그들이 국민 영웅이 될 뿐이라는 걸 정부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돌은 다시 런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 45년간, 웨스트민스터에 조용히 놓여 있었습니다. 낫지 않는 상처처럼. 1996년 11월 30일, 스코틀랜드의 국경일인 성 앤드루의 날에, 영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운명의 돌을 스코틀랜드에 돌려주었습니다. 에든버러 성에 안치되어 스코틀랜드 왕관 보석들과 나란히 놓였습니다. 조건은 하나뿐이었습니다. 앞으로 대관식이 있으면 런던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
2023년 5월 6일, 운명의 돌이 70년 만에 런던으로 내려갔습니다. 찰스 3세의 대관식을 위해서였습니다. 왕은 돌 위에 앉았습니다. 700년 전 에드워드 1세가 설계한 그대로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스코틀랜드가 기꺼이 보낸 것이었습니다. '세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했습니다. 에드워드가 한 번 빼앗고, 학생들이 한 번 되찾고, 정부가 한 번 돌려주었습니다. 세 번 만에, 나무는 넘어졌습니다. 정복의 도구로 빼앗긴 돌이 전혀 다른 것으로 돌아왔습니다 — 상징은 제국보다 오래 살아남는다는 증거로. 빼앗아도, 빼앗아도, 끝내 가져갈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