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프랑스 아르망티에르. 전선 뒤편의 작은 묘지에서 영국군 종군목사 데이비드 레일턴의 발이 멈췄다. 십자가 하나에 이렇게만 적혀 있었다. "이름 모를 영국 병사." 이름도, 계급도, 고향도 없다. 모든 걸 바치고 진흙 속으로 사라진 남자. 제1차 세계대전 한복판, 그런 무덤은 수천 개였다. 하지만 이 하나가 레일턴의 머릿속에 불도장처럼 찍혔다.
1918년 전쟁이 끝났을 때, 영국군 전사자는 백만에 가까웠다. 수십만은 아예 사라졌다. 포탄에 산산이 찢기고, 참호 진흙에 삼켜져 흔적조차 없는 사람들. 시신도 없고 무덤도 없는 가족들은 슬픔을 붙잡을 곳조차 없었다. 레일턴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편지를 보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병사 한 명을 데려와, 왕들이 잠든 바로 그 자리에 나라 최고의 예우로 묻자고.
1920년 11월 7일 밤. 프랑스와 벨기에 전장 여섯 곳에서 신원 미상의 영국군 유해가 조용히 발굴됐다. 똑같은 자루에 담겨 프랑스 생폴의 작은 예배당에 나란히 놓였다. 자정, 와이엇 준장이 홀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하나를 가리켰다. 그게 전부였다. 나머지 다섯은 다시 묻혔다. 선택된 사람이 누구인지, 이제 영원히 알 수 없다. 바로 그것이 핵심이었다.
관은 영국 왕실의 햄프턴코트 궁전에서 가져온 참나무로 짰다. 이름 없는 남자를 위한 왕실의 나무. 관 뚜껑 위에는 런던탑에서 가져온 십자군 시대의 검이 놓였다. 기사의 시대가 낳은 무기가, 기관총 시대에 쓰러진 병사의 가슴 위에 얹힌 것이다. 철판에 이렇게 새겼다. "왕과 조국을 위해 대전에서 쓰러진 영국의 전사." 관은 영원히 봉인됐다. 이름도, 나이도, 어떤 전투에서 죽었는지도—전부 잠겼다.
1920년 11월 11일. 총성이 멈춘 지 정확히 2년. 관은 검은 말 여섯 마리가 끄는 수레에 실려 런던 시내를 지났다. 조지 5세 국왕이 관 뒤를 걸었다. 수십만 명이 거리에 늘어서서,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돌아오지 못한 아들 사진을 꼭 쥔 손들이 보였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정문에서, 영국 최고 무공 훈장 수훈자들이 관을 어깨에 올렸다.
국왕이 열린 무덤 위로 프랑스 흙 한 줌을 뿌렸다. 무덤은 프랑스와 벨기에 전장에서 가져온 흙 백 자루로 채워졌다. 그가 목숨 걸고 지킨 바로 그 땅에서 영원히 쉬도록. 바닥에는 검은 벨기에산 대리석이 깔렸고, 이렇게 새겨졌다. "하느님과 나라를 위해 선한 일을 했기에, 왕들 사이에 묻노라."
세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지만, 이 남자는 단 한 번 쓰러지고도 온 나라를 무릎 꿇게 만들었다. 그 무덤은 영국에서 가장 거룩한 자리가 됐다. 관광객도, 성직자도, 국왕도 절대 밟을 수 없는 유일한 무덤. 1923년 왕실 결혼식 날, 신부가 자신의 부케를 이 무덤 위에 올렸다. 참호에서 죽은 오빠를 위해서였다.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미국은 자국 최고 무공 훈장을 이 이름 없는 남자에게 수여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는 왕과 여왕, 과학자, 시인들이 잠들어 있다. 수백 년 영국 역사의 거인들. 하지만 이 건물에서 가장 거룩한 자리는 이름을 아무도 모르는 사람의 것이다. 공장 노동자였을 수도, 학교 선생이었을 수도, 농부의 아들이었을 수도 있다. 바로 그게 핵심이다. 그는 자신이 누구였는지로 기려지는 게 아니다. 진흙에 묻힌 모든 이름, 작별 인사도 못 한 모든 가족을 대신해 기려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