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3월, 중국 시안 외곽의 먼지투성이 마을에서 양즈파라는 농부가 이웃 두 명과 함께 우물을 파기 시작했다. 극심한 가뭄에 농작물이 죽어가고 있었고, 필요한 건 오직 물뿐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4미터쯤 팠을 때, 삽이 뭔가 단단한 것에 부딪혔다. 돌이겠거니 했다. 아니었다.
흙 속에서 구운 흙덩이가 나왔다. 하나 더. 그리고 사람 머리 하나——고요한 눈, 희미한 미소, 한 올 한 올 정교하게 빚어낸 머리카락. 전부 구운 흙, 도자기였다. 농부들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중국 시골에서는 땅속에 묻힌 걸 함부로 건드리면 귀신이 따라붙는다고 했다. 양즈파의 본능은 당장 도로 묻으라고 외쳤다.
하지만 호기심이 이겼다——그리고 농사꾼이란 원래, 쓸모 있어 보이는 건 절대 그냥 두고 오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는 조각들을 수레에 싣고 마을 문화재 관리소까지 끌고 갔다. 돌아올 때 손에 쥔 건 10위안. 우리 돈으로 2천 원 남짓. 20세기 최대의 고고학적 발견에 붙은 가격표——2천 원.
몇 주 만에 산시성 고고학 연구팀이 도착했다. 몇 달이 지나자 전체 그림이 드러났다. 대대로 밀을 키워온 이 메마른 밭 아래, 통째로 하나의 지하 군단이 잠들어 있었다. 실물 크기의 병사, 말, 전차 8천여 점. 모두 2천여 년 전에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중국을 최초로 하나의 나라로 통일한 황제, 진시황. 그의 무덤을 영원히 지키기 위한 군대였다.
이 발견은 모든 것을 뒤집어놓았다. 양즈파의 이름 없던 마을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유적지가 됐다. 시안은 잊힌 내륙 도시에서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바뀌었다. 중국은 만리장성에 버금가는 새 상징을 얻었다——2천 년 전 문명이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를 멈춰 세울 수 있다는 살아 있는 증거.
“세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이 있다. 세 번이면 어떤 나무든 쓰러진다고. 양즈파는 세 번보다 더 많이 찍혔다. 땅을 잃었다. 이름이 지워졌다. 공은 고스란히 관리들 몫이 됐다. 그런데 이 나무는 끝내 넘어지지 않았다. 황제의 군대를 직접 캐낸 사람이, 자기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조차 증명하지 못하게 됐는데도.
몇 년이 지나서야 박물관은 그에게 자리 하나를 내줬다. 기념품 가게에서 관광객한테 사인해 주는 일. 이 장면을 한번 떠올려 보라. 일흔이 넘은 노인, 수십 년 햇볕에 깊이 패인 얼굴. 작은 책상에 앉아 “양즈파——병마용 발견자”라고 쓰고 있다. 벽 하나 너머, 8천 명의 불멸의 병사들이 소리 없이 도열해 있다.
양즈파는 2024년, 아흔한 살에 세상을 떠났다. 부자가 된 적 없다. 그 사인 책상 밖에서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를 만났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같은 말을 한다. “어떻게 제국을 발견하셨어요?” 물으면, 그는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고. “우물 파고 있었어요.” 그가 말했다. “목이 말라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