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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관과 정복·5/7·2
Photograph of Acropolis of Athens

The place

Acropolis of Athens

페리클레스와 아테네의 영광

폐허를 경이로 바꾼 정치가

449-429 BCEAcropolis of Athens

원전 449년, 페리클레스는 대담한 계획을 내놓았다. 아테네의 성스러운 언덕 아크로폴리스를 새로 짓겠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가 쓰려는 돈이 델로스 동맹의 금고에서 나온다는 점이었다. 이 동맹은 아테네의 동맹국들이 페르시아 제국에 맞서기 위해 군사비를 모은 조직이었다. 그런데 페리클레스는 이 돈으로 신전을 짓겠다고 했다.

반대파는 격분했다. "동맹국들의 돈으로 우리 도시를 꾸미고 있다. 마치 허영심 많은 여인이 보석과 비싼 신전으로 치장하는 꼴이다." 아테네가 폭군처럼 행동하고 있다며, 남의 돈으로 자기 영광을 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페리클레스의 대답은 놀랍도록 당당했다. 아테네는 의무를 다했다. 페르시아는 물리쳤고, 바다는 안전해졌다. 동맹국들은 보호를 위해 돈을 냈고, 보호를 받았다. 남는 돈이 있다면 아테네가 원하는 대로 쓸 권리가 있다.

그런 다음 페리클레스는 모두를 침묵시킨 한 수를 던졌다. 시민들이 공공 자금 사용을 원하지 않는다면, 자기가 사비로 건설 비용 전액을 내겠다고 했다. 단, 조건이 있었다. 건물에는 도시 이름 대신 자기 이름을 새기겠다는 것이었다.

민회는 경악했다. 파르테논 신전에 페리클레스의 이름을? 절대 안 된다! 즉시 공공 자금 지원 계속을 결의했다.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는데, 아무도 그 이름이 페리클레스 한 사람의 것이 되는 건 원하지 않았다.

이후 20년간 아크로폴리스는 그의 지휘 아래 완전히 탈바꿈했다. 당대 최고의 조각가 페이디아스를 예술 총감독으로 임명했다. 건축가 익티노스와 칼리크라테스에게 파르테논 설계를, 므네시클레스에게 정문 프로필라이아 설계를 맡겼다. 수천 명의 노동자가 대리석을 캐고 옮기고 조각했다.

페리클레스는 완공을 보지 못했다. 기원전 429년, 결국 아테네를 무릎 꿇린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에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건축물은 모든 것을 견뎌냈다. 로마 점령, 비잔틴 개조, 오스만 사원, 베네치아 포격, 그리고 현대의 복원까지.

전쟁 첫해가 끝난 뒤 전사자 추모 연설에서, 그는 자신이 무엇을 짓고자 했는지를 말했다. "우리는 사치에 빠지지 않으면서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나약해지지 않으면서 지혜를 사랑한다… 미래 세대가 우리를 경탄할 것이다, 지금 세대가 경탄하듯이." 그의 말이 맞았다.

이야기의 교훈

비전을 가진 지도자는 재앙을 승리로 바꾼다. 페리클레스는 페르시아의 파괴가 남긴 잿더미 위에 문명의 영원한 상징을 세웠다.

등장인물

P
Pericles
P
Phidias
I
Ictinus
C
Callicrates
M
Mnesicles
T
The Athenian Assembly

출처

Plutarch's Life of Pericles, Thucydides's History (the Funeral Oration), Diodorus Siculus's Bibliotheca Histo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