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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6/7·3
Photograph of Acropolis of Athens

The place

Acropolis of Athens

잿더미 위의 맹세

아테네를 불태운 페르시아가 파르테논을 낳았다

480 BCEAcropolis of Athens

원전 480년, 가을.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가 아테네 한복판 언덕 위에 서 있었다. 발아래로 도시 전체가 불타고 있었다. 그가 끌고 온 군대는 약 30만 — 고대 세계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규모였다. 스파르타인들이 테르모필레라는 좁은 산길에서 목숨 걸고 막아봤지만, 전머하고도 며칠밖에 못 벌었다. 크세르크세스가 아테네에 도착했을 때 도시는 텅 비어 있었다. 아테네인들은 해군에 전부를 걸고, 시민들을 섬으로 대피시킨 뒤였다.

그런데 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소수의 사제들과 전사들이 아크로폴리스 꼭대기에 나무 방벽을 쌍고 버티고 있었다. 신탁이 이런 말을 남겼기 때문이다 — “나무 벽이 아테네를 구하리라.” 자기들 발밑의 이 나무 벽이 그것이라 믿었다. 아니었다. 페르시아 병사들이 절벽 뒤편의 숨은 길을 찾아 등 뒤로 올라왔고, 제단 앞에서 기도하던 이들을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죽였다. 그리고 모든 것에 불을 질렀다.

수백 년 동안 쌍아 올린 신성한 유산이 하루 만에 재가 됐다. 채색된 조각과 봉헌물로 가득했던 아테나 대신전이 무너져 내렸다. 사제들이 미리 빼돌린 건 딱 하나 — 올리브나무로 깎은 여신상. 그 외에 대대로 신에게 바쳐온 보물, 채색된 기둥, 모든 예술품이 사라졌다. 크세르크세스는 아테네의 영혼을 뿌리채 뽑아버렸다.

하지만 기뿐할 틈도 없었다. 아테네 장군 테미스토클레스가 거대한 페르시아 함대를 살라미스 섬 근처 좁은 해협으로 유인했다. 덧이었다. 덩치 큰 페르시아 전함들은 방향을 틀지도 못했고, 날렴한 그리스 소형 함선들이 하나하나 찢어버렸다. 크세르크세스는 해안에 놓은 옥좌에서 그 참극을 전부 지켜본 뒤, 그날 밤 페르시아로 도망쳤다. 남겨진 군대는 이듬해 완전히 궤멸됐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이야기다. 그리스인들은 맹세를 세웠다 — 다시 짓지 않겠다. 불탄 신전도, 부서진 기둥도, 무너진 돌무더기도 전부 그 자리 그대로 놔두겠다고. 페르시아가 무슨 짓을 했는지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서. 진심이었다. 30년 동안, 그 언덕 위의 폐허에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 한 세대의 아테네 사람들이 매일 자기 성지의 잔해 옆을 지나며 자라났다.

세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했다. 맞다, 아테네는 단 한 번 만에 쓰러졌다. 하지만 쓰러진 채로 30년을 버텐고, 도끼가 상상도 못 한 모습으로 다시 일어섰다. 기원전 449년, 페르시아와 평화 조약이 맺어지자 정치가 페리클레스가 나섰다 — 맹세는 충분히 지켰다, 이제 세상이 본 적 없는 걸 세울 때다. 파르테논 신전은 옛 신전이 불타버린 바로 그 자리에서 솟아올랐다. 벽면의 모든 조각이 하나의 이야기를 했다 — 질서가 혼란을 이기고, 문명이 파괴를 넘는다. 아테네가 돌로 새긴 한마디 — “너희가 우리를 태웠다. 우리가 뭘 지었는지 봐라.”

19세기, 고고학자들이 아크로폴리스 땅을 파내려가자 크세르크세스의 불이 남긴 흔적이 고스란히 나왔다. 그을린 조각상, 깨진 부조, 검게 변한 돌 — 2천5백 년 전 아테네인들이 묻어둔 바로 그 자리에, 한 치도 움직이지 않은 채. 마치 이 도시 자체가 하나만 확실히 해두고 싶었던 것처럼 — 아무도 잊지 못하게.

이야기의 교훈

불탄 것은 더 강하게 다시 세울 수 있다. 페르시아가 아테네를 파괴했고 — 그 결과 파르테논이 태어났다.

등장인물

크세르크세스
테미스토클레스
아테네의 사제와 수비대
페르시아 군대

출처

Herodotus’s Histories (Books 8-9), Thucydides’s History, Isocrates’s Panegyricus, Diodorus Siculus’s Bibliotheca Histo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