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의 왕좌를 차지하려면 야망만으로는 부족했다. 미노스에게 필요한 건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증거였다. 그래서 그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기도했다. "제가 왕이 될 자격이 있다면, 징표를 보내주십시오. 보내주시는 것이 무엇이든 제물로 바치겠습니다." 포세이돈이 응답했다. 파도 사이로 순백의 황소가 걸어 나왔다. 살아 있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완벽한 모습이었다. 크레타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 확신했다. 이 남자는 신이 택한 사람이라고.
그런데 미노스는 그 황소를 보고 차마 죽일 수가 없었다. 너무 아름다웠다. 그래서 꼼수를 부렸다. 평범한 황소를 대신 제물로 바치고, 신이 보낸 황소는 자기가 차지했다. 포세이돈이 눈치 못 채겠지, 아니면 신경 안 쓰겠지. 치명적인 착각이었다. 신의 복수는 폭풍이나 전염병 같은 게 아니었다. 미노스의 아내 파시파에의 정신을 뒤흔들어, 하필 그 하얀 황소에게 빠져들게 만드는 저주였다.
이성을 잃은 파시파에가 찾아간 사람은 당대 최고의 천재 장인, 아테네에서 온 다이달로스였다. 그가 만든 것은 끔찍했다. 진짜 가죽을 씌운 나무 암소, 진짜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정교한 모형이었다. 그 만남에서 불가능한 존재가 태어났다. 사람의 몸에 황소의 머리를 가진 생명체. 사람들은 그를 미노타우로스라 불렀다. 진짜 이름은 아스테리온, '별처럼 빛나는 자'라는 뜻이었다. 괴물에게도 아름다운 이름은 주어지는 법이다.
파시파에는 처음에 그 아이를 보통 아이처럼 키우려 했다. 잠깐은 괜찮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미노타우로스가 자라면서 굶주림도 함께 자랐는데, 그가 원한 건 빵이나 고기가 아니었다. 사람의 살이었다. 살육이 시작되자 미노스는 자기가 저지른 일의 대가와 마주해야 했다. 아내의 아들을 죽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풀어놓을 수도 없었다. 결국 다시 다이달로스를 불렀다. 이번엔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을 만들라는 주문이었다.
다이달로스는 감옥을 짓지 않았다. 그보다 더 끔찍한 걸 만들었다. 크노소스 궁전 아래에 미궁을 설계한 것이다. 한 번 들어가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미로. 복도는 제자리로 돌아오고, 계단은 어둠 속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막다른 길은 셀 수도 없었다. 그 한가운데, 빛 한 줄기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미노타우로스가 서성이며 울부짖으며 먹이를 기다렸다.
먹이는 아테네에서 왔다. 미노스의 아들 안드로게오스가 아테네에서 죽었다. 정치적 음모에 휘말렸고, 시기심에 의한 살해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미노스는 함대를 이끌고 아테네를 짓밟았다. 그리고 내건 화해 조건은 소름끼치는 것이었다. 9년마다 젊은 남녀 일곱 명씩, 총 열네 명을 미궁에 보내라. 무기도 없이, 지도도 없이, 나갈 길도 없이. 어둠 속에서 괴물과 단둘이.
'세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포세이돈에겐 세 번이 필요 없었다. 딱 한 번, 미노스가 약속을 어긴 그 순간이면 충분했다. 그 한 번의 배신이 괴물을 낳고, 미궁을 낳고, 수십 년에 걸쳐 아테네 부모들이 겪어야 할 최악의 공포를 낳았다. 내 아이가 제물로 뽑힐 수도 있다는 공포. 그 모든 것의 시작은 먼 섬의 왕 하나가 신과의 약속을 가볍게 여긴 것이었다.
크노소스의 유적은 지금도 남아 있다. 수백 개의 방, 끝없이 이어지는 복도, 불쑥 나타나는 막다른 벽. 궁전이 전설을 만들어낸 건지, 전설이 먼저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3천 년을 살아남은 이야기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신과 거래를 했으면, 끝까지 지켜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