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79년 8월 24일 오후, 대 플리니우스는 나폴리만 건너편 미세눔의 별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쉰다섯 살, 로마 제국 함대 사령관이자 자연 세계를 총망라한 백과사전 37권의 저자였다. 누이가 테라스로 불렀다. 만 건너편에서 이상한 구름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곧게 치솟은 연기 기둥이 꼭대기에서 소나무처럼 넓게 퍼졌다. 수백 년간 잠들어 있던 베수비오 화산이 모든 것을 삼키려 한다는 사실을, 아직 아무도 몰랐다.
첫 반응은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작은 배를 준비시켜 만을 건너 저 구름을 가까이서 관찰하려 했다. 하지만 출발 전, 화산 기슭에 사는 친구 렉티나에게서 절박한 전갈이 도착했다. 해안이 쏟아지는 돌 아래 사라지고 있었고, 탈출구는 바다뿐이었다. 과학적 호기심은 구출 작전으로 바뀌었다. 플리니우스는 작은 배 한 척이 아니라 군함 여러 척, 함대 전체를 출격시키고, 모두가 도망치는 분화를 향해 정면으로 항해했다.
조타수가 돌아가자고 애원했을 때, 플리니우스는 이천 년 동안 울려 퍼진 한마디를 남겼다. "Fortes fortuna iuvat" — 운명은 용감한 자의 편이다. 그리고 전진을 명했다. 하지만 렉티나 근처에는 접안할 수 없었다. 화산 잔해와 솟아오른 해저가 해안을 막고 있었다. 남쪽 스타비아이로 방향을 틀었다. 그곳에서 친구 폼포니아누스가 배에 짐을 실었지만, 바람이 화산 쪽에서 불어와 항구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는다"는 옛말이 있다. 그날 밤 플리니우스는 호랑이 굴 안에서 목욕을 하고 저녁까지 먹었다. 그의 태연함이 어찌나 대단했던지, 겁에 질린 주인들이 진짜로 안심했다. 조카는 나중에 묘한 어조로 적었다 — 그의 용기가 더 놀라운지, 위험에 대한 완벽한 무관심이 더 놀라운지 알 수 없었다고. 밤사이 안뜰이 경석으로 빠르게 채워져 일행은 해변으로 뛰었다. 머리에 베개를 묶어 쏟아지는 돌을 막으면서.
8월 25일 새벽, 하늘은 밀봉된 방처럼 여전히 캄캄했다. 오래전부터 호흡 문제를 앓던 플리니우스는 해변으로 걸어가 바다로 탈출할 수 있는지 살폈다. 화산 가스 — 아마도 이산화황과 이산화탄소의 뜨거운 물결 — 가 그를 쓰러뜨렸다. 돛천 위에 누워 차가운 물을 두 번 달라고 한 뒤 의식을 잃었다. 이틀 뒤 빛이 돌아왔을 때, 그의 시신이 해변에서 온전한 채로 발견되었다. 죽었다기보다 잠든 것처럼 보였다.
조카인 소 플리니우스는 미세눔에 남아 있었다. 몇 년 뒤, 역사가 타키투스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조카가 쓴 두 통의 편지는 고대 문학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자연재해 목격담이 되었다. 과학자들은 지금도 대규모 화산 폭발을 삼촌의 이름을 따 '플리니식 분화'라고 부른다. 대 플리니우스는 살았던 그대로 죽었다 — 위험에서 도망치지 않고 지식을 향해 돛을 올리며. 그리고 조카의 글이, 폼페이를 묻어버린 재앙이 영원히 잊히지 않게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