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73년 봄, 몇 달에 걸쳐 절벽에 경사로를 올린 끝에 로마 제10군단이 마사다 외벽을 부쉈다. 수비대는 나무와 흙으로 이중 벽을 세워뒀다. 뚫지 못하자 불을 놨다. 바람이 잠시 로마 쪽으로 불길을 몰았다가 돌아섰다. 해 질 무렵 벽은 재가 됐다. 새벽이면 만 명이 쏟아질 터. 벽은 없었다. 남은 건 선택뿐.
이들은 피난민이 아니었다. '단검의 사람들' 시카리, 유대 반란군 중 가장 과격한 세력. 7년 전 로마가 예루살렘 성전을 약탈하고 시민을 학살하자 유대가 들끓었다. 반란군은 로마 군단 하나를 통째로 무너뜨렸다. 로마가 6만 대군으로 쳤다. 요새가 하나둘 떨어졌다. 예루살렘이 불탔다. 성전이 무너졌다. 마사다가 마지막이었다 — 사해 위 절벽에 남은 960명, 헤롯왕이 백 년 전 쌓아둔 식량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날 밤, 지도자 엘아자르 벤 야이르가 궁전에 모두를 모았다. 로마에 넘어가 유일한 기록을 남긴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엘아자르는 패배 뒤의 운명을 이야기했다 — 광산과 검투장에서 죽을 남자들, 짓밟힐 여자들, 노예로 자라 자기 민족도 모를 아이들. "아내들이 치욕 없이 가게 합시다. 아이들이 노예를 모르게 합시다." 포기가 아니었다. 마지막 자유로운 선택을 하자는 것이었다.
남자들이 울었다. 아내를 안은 채 놓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엘아자르는 멈추지 않았다. 둘러보라 했다 — 타는 벽, 산기슭을 올가미처럼 두른 로마 진영. 협상은 없다. 로마는 반란군에게 본보기를 만들 뿐이다. 예루살렘 함락 후 십자가형에 나무가 모자랄 지경이었다는 걸 다들 알았다. 천천히, 눈물 속에서, 그들은 받아들였다.
이후 벌어진 일은 처절할 만큼 체계적이었다. 유대 율법은 자살을 금한다. 그래서 딱 한 명만 스스로 죽는 방법을 만들었다. 각자 가족에게 갔다. 안았다. 그리고 죽였다. 재산은 태웠지만 식량은 남겨뒀다 — 로마에 보내는 말이었다: 굶어 죽은 게 아니다, 우리가 택한 것이다. 제비를 뽑아 열 명이 나머지를 베었다. 열 명이 다시 뽑았다. 마지막 한 명이 불을 지르고 자신의 칼로 스스로를 찔렀다.
새벽, 로마군이 돌격했다 — 방패를 맞대고 칼을 뽑은 채. 맞닥뜨린 건 침묵이었다. "사방의 적막과 궁전 안의 불길"뿐이라고 요세푸스는 적었다. 소리를 질렀다. 방패를 두들겼다. 돌아오는 건 없었다. 지하에서 여자 둘과 아이 다섯이 나왔다. 엘아자르의 친척인 여자가 모든 걸 말해줬다. 예루살렘을 불태운 역전의 병사들이 시신 앞에서 말을 잃었다.
이상한 건 이거다. 이후 2천 년간 유대교를 이끈 랍비들은 마사다를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다른 영웅을 골랐다 — 포위된 예루살렘을 빠져나와 학교를 연 학자. 성전도 땅도 없이 이어지는 배움의 전통을 세운 사람. 마사다의 칼과 불은 그들이 거부한 전부였다. 하지만 이야기는 살아남았다. 죽기를 각오하면 산다고 했던가 — 그들은 죽었다. 그런데 그 침묵이, 무릎 꿇느니 죽음을 택한 사람들의 침묵이, 아직도 그 고원 위에 울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