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기, 스리랑카의 카샤파 왕은 정글 한가운데 솟은 바위 요새 시기리야에 벽 하나를 거울처럼 닦게 했다. 석회에 달걀흰자, 야생 꿀을 섞어 바르고 밀랍으로 문질러 광을 냈다. 그 벽은 '구름 속 여인들' — 금빛 구름 사이에 떠 있는 여인들을 그린 벽화 바로 아래에 있었다. 벽을 따라 걸으면 위에는 그림 속 여인, 아래에는 거울에 비친 여인이 나란히 나타났다. 왕의 사적인 즐거움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 벽의 진짜 운명은 전혀 달랐다.
495년, 카샤파는 왕좌를 되찾으러 온 친형제와의 전투에서 죽었다. 요새는 불교 사원이 되었고, 구름 여인들은 더 이상 왕 혼자만의 보물이 아니었다. 승려, 순례자, 군인, 상인, 농부 — 바위를 오르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 그림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예상 못 한 일이 벌어졌다. 벽화에 압도된 사람들이 날카로운 도구를 꺼내 매끈한 벽에 자기 감정을 긁어 새기기 시작한 것이다. 거울이 공책이 되는 순간이었다.
6세기부터 14세기까지, 무려 800년에 걸쳐 1,800편이 넘는 글이 거울벽에 새겨졌다. 사랑 시, 인생에 대한 단상, 불교적 경고, 농담, 그리고 '나 여기 왔다 감' 수준의 메모까지. 싱할라어, 산스크리트어, 타밀어로 쓰인 이 글들은 누가 기획한 게 아니었다. 그냥 인간의 본능이었다 — 아름다운 걸 보면 뭔가 말하고 싶어지는. 이 낙서들이 모여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싱할라 시 모음집이 됐다.
대부분은 남자들이었고, 주제는 하나같이 욕망이었다. "금빛 피부의 여인이 마음과 눈을 사로잡았다"고 한 사람은 썼다. 다른 사람은 그림 속 여인의 곁눈질에 그대로 쓰러졌다고 했다 — "그 비스듬한 눈빛에 사로잡혀, 나는 바닥에 엎드려 버렸다." 가벼운 구경꾼들이 아니었다. 좁은 통로에 서서 금빛 여인들이 구름 사이에 떠 있는 모습을 올려다보다가, 자기가 느끼는 감정을 담을 말이 없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여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마하마타의 아내' 데바는 질투가 뚝뚝 떨어지는 시를 남겼다 — "절벽 위 사슴 눈의 여자가 나를 미치게 한다. 진주를 흔들며 내 남편한테 추파를 던지잖아." 그리고 이름 모를 한 여성이 벽 전체에서 가장 날카로운 한 마디를 남겼다 — "여자인 나로서는 저 그림 속 여인들이 안쓰럽다. 멍청한 남자들, 시를 쓴다고 그 난리치면서 — 술 한 잔 먹을 것 하나 갖고 온 놈은 없구나." 1,500년 전 글인데, 지금 읽어도 뼈를 때린다.
승려 키티는 사랑에 눈먼 방문객들이 놓친 걸 꿰뚫어 봤다. 그의 글은 다음 사람을 위한 경고 같았다 — "여기 머물거든 마음을 빼앗기지 마라. 쾌락은 고통이 되고, 고통은 쾌락을 닮는다." 구름 여인들이 바로 그 교훈이라는 걸 그는 알았다. 아름답고, 갖고 싶지만, 절대 닿을 수 없는 존재. 그 갈망 자체가 핵심이었다. 그리고 그 그림 아래 벽에는? 정확히 그 갈망을 새긴 1,800개의 흔적이 돌에 깊이 박혀 있었다.
1956년, 고고학자 세나라트 파라나비타나가 이 중 685편을 해독해 세상에 내놓았다 — 천 년 넘게 침묵하던 목소리들이 되살아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반전이 있다. 우리 말에 '사람은 가도 말은 남는다'고 했다. 거울벽은 아름다움을 비추려고 만들어졌다. 하지만 세월이 거울을 흐리게 했다. 비침은 사라졌다. 대신 살아남은 건, 그 비침이 있던 자리에 서서 자기가 본 것을 어떻게든 말로 남기려 한 사람들의 글이었다. 거울은 실패했다. 시는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