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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과 저주·3/4·4
Photograph of Tower of London

The place

Tower of London

사라진 두 왕자

영국 역사상 가장 소름 끼치는 미제 사건

1483년 — 장미전쟁 시대Tower of London

1483년 봄, 열두 살짜리 소년이 잉글랜드의 왕이 됐다. 에드워드 5세. 아버지를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였다. 아홉 살 동생 리처드와 함께 런던탑으로 보내졌는데, 그때만 해도 런던탑은 감옥이 아니라 왕궁이었다. 삼촌인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가 섭정을 맡았다. 사람들은 탑 정원에서 활을 쏘며 노는 두 소년을 목격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목격담이 끊겼다. 여름이 오기 전에 두 왕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삼촌의 행보는 빨랐다. 그는 두 조카가 사생아라고 선언했다. 아버지 에드워드 4세가 이미 다른 여자와 비밀 약혼을 한 상태에서 결혼했으니 혼인 자체가 무효라는 논리였다. 왕위 계승권이 법적으로 사라진 두 소년 대신, 삼촌이 왕관을 썼다. 리처드 3세의 탄생이었다. 소문은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프랑스 재상은 대놓고 리처드가 조카들을 죽였다고 비난했다. 모두가 같은 질문을 했다. 왕자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고.

가장 유명한 증언은 30년 뒤에 나왔다. 토머스 모어 경이 쓴 기록에 따르면, 리처드 3세가 제임스 티렐이라는 기사를 런던탑에 보냈다. 티렐은 두 남자를 고용했고, 그들은 한밤중에 왕자들의 방에 숨어 들어가 잠든 아이들의 얼굴에 베개를 눌렀다. 티렐은 1502년 처형 직전에 자백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 자백서는 어디에도 없다. 문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자백'이 세상에 알려져서 가장 이득을 본 사람? 새 왕 헨리 7세였다.

거의 200년이 흘렀다. 1674년, 런던탑 안의 오래된 계단을 허무던 인부들이 돌 밑에서 나무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안에는 두 아이의 뼈가 서로 엉킨 채 들어 있었다. 찰스 2세는 이 유골을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대리석 항아리에 안치했다. 1933년, 의학자들이 뼈를 조사했다. 결론은 대략 열두 살과 열 살 정도의 아이라는 것. 왕자들의 나이와 딱 맞았다. 오늘날 DNA 검사면 진실을 밝힐 수 있다. 하지만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항아리를 열어달라는 모든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일부 역사학자들은 리처드 3세가 아니라 헨리 7세를 지목한다. 헨리는 1485년 보즈워스 전투에서 리처드를 꺾고 왕좌에 앉은 인물이다. 이 전투로 잉글랜드를 30년간 피로 물들인 장미전쟁이 끝났다. 그런데 왕자들이 살아 있었다면, 헨리의 왕위가 더 위태로웠다. 리처드보다 헨리에게 왕자들이 더 위험한 존재였다는 뜻이다. 야심 넘치는 귀족 버킹엄 공작을 범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왕관 근처에 있던 자라면 누구든 동기가 있었다.

가장 기묘한 반전은 따로 있다. 1490년대, 퍼킨 워벡이라는 청년이 유럽 각지의 궁정에 나타나 자신이 리처드 왕자라고 주장했다. 살아서 탈출한 둘째 왕자라는 것이었다. 꽤나 설득력이 있었는지, 프랑스 왕과 스코틀랜드 왕까지 그의 편을 들었다. 잉글랜드 침공을 두 차례 시도했지만 결국 붙잡혀 처형됐다. 진짜 왕자였을까? 거의 확실히 아니다. 하지만 그때도 증명하지 못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 미스터리만큼은 오백 년을 넘게 찍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대리석 항아리 안에 두 아이의 뼈가 잠들어 있다. 누구의 뼈인지 모른다.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도 모른다. 왕자들이 정말 살해당한 건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런던탑은 수백 년간 셀 수 없이 많은 비밀을 품었지만, 이것만은 끝내 내놓지 않았다. 어떤 미스터리는 증거가 사라져서 풀리지 않는 게 아니다. 권력을 쥔 자들이 답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풀리지 않는 것이다.

이야기의 교훈

권력은 가장 무고한 존재마저 집어삼키고, 어떤 진실은 영원히 역사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묻혀 있다

등장인물

에드워드 5세 — 열두 살의 소년 왕
요크 공작 리처드 — 아홉 살 동생
리처드 3세 — 섭정에서 왕이 된 삼촌
제임스 티렐 — 암살 혐의자
엘리자베스 우드빌 — 왕자들의 어머니
퍼킨 워벡 — 리처드 왕자를 사칭한 인물

출처

토머스 모어 경의 《리처드 3세의 역사》, 도미닉 만치니의 동시대 기록, 폴리도어 버질의 《영국사》, 1933년 법의학 조사 보고서